미국 미시간주(州) 뉴트로이에 있는 비커스엔지니어링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독일 폭스바겐 등에 자동차 정밀부품을 공급한다. 지난 10년 동안 직원이 다섯 배 늘고, 평균임금은 두 배가량 올랐다.

맷 타일러 비커스엔지니어링 최고경영자(CEO)는 “2006년 도입한 일본 DMG모리세이키사(社)의 산업용 로봇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생산성과 품질이 개선돼 일감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이후 비커스엔지니어링은 계속 일본산 로봇만을 도입해 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의 제조업 부활을 외치는 가운데 첨단 제조장비에 대한 미국의 해외 의존 심화가 도마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외국 로봇이 미국 공장을 침공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제조업 부활' 외쳤지만…미국, 외국 로봇 없으면 공장 안돌아간다
◆일본·유럽 로봇으로 돌아가는 미국 공장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유연생산체계(FMS)’라고 하는 공장 자동화 설비 분야에서 미국은 작년 일본, 유럽연합(EU), 스위스를 대상으로 41억달러(약 4조5600억원)의 무역적자를 냈다. 일본과 유럽에서 산업용 로봇, 컴퓨터 수치제어(CNC) 공작기계, 산업용 센서 등 첨단 제조장비를 들여오면서 적자가 발생했다.

WSJ는 “2001년 70억달러 적자에서 줄었지만 이는 일본·유럽 기업이 미국에 생산공장을 세우면서 나타난 착시”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공장 자동화 설비 분야에서 세계를 대상으로는 흑자를 내고 있는데 주로 부품과 정밀성이 떨어지는 기계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한 덕분이다. 미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첨단장비는 대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 산업용 기계업종 단체인 VDMA에 따르면 미국 산업용 기계 업체들은 자국 시장에서도 입지4가 좁아지고 있다. 미국산 산업용 기계는 1995년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81%를 차지했지만 2015년에는 63%로 떨어졌다.

전기차로 혁신을 이끌고 있는 테슬라도 독일 쿠카의 산업용 로봇 없이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쿠카는 지난해 중국 메이디그룹이 인수했다. 중국 정부가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해 내세운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의 일환이다. 테슬라는 네바다주에 지은 배터리 공장을 돌리기 위해 지난해 11월 독일 공장 자동화 업체 그로만엔지니어링을 인수하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 기술 주도하다 뒤처져

1970년대까지 첨단 제조업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다. 자동차 업체가 최전선에 섰다. 제너럴모터스(GM)는 1961년 세계 최초의 산업용 로봇인 ‘유니메이트’를 뉴저지주 트렌턴공장에 설치했다. 1970년대 내내 GM과 포드는 산업용 로봇 활용 방안을 연구했다.

그런 미국 제조업이 1980년대 들어 위기를 맞았다. 수요 부진과 달러 강세, 전략적 실책 등이 겹치면서 미국 기계장비 업체 10곳 중 7곳이 문을 닫아야 했다. 세계화와 함께 미국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외주화했다. 첨단 생산장비 투자도 시들해졌다. 알렉스 웨스트 IHS마킷 제조기술 애널리스트는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서 미국 제조기술 분야에선 계속해서 두뇌 유출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일본과 유럽 업체들은 후발 주자였다.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업체로 꼽히는 일본 화낙만 해도 1958년 설립된 뒤 미국에서 전량 수입하던 CNC 공작기계를 국산화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1982년에는 당시 로봇 선도 기업이던 GM과 로봇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GM은 경영 부진 탓에 1992년 화낙에 합작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이후 화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업체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GM이 필요로 하는 산업용 로봇을 거의 전량 공급하고 있다. WSJ는 “일본과 유럽은 자동차와 전자, 의약품 등 각종 산업에서 나오는 수요가 많아 공장 자동화 기술이 발달할 여지가 컸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