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빚 탕감" SOS에…"볼 일 없다"는 국민연금
국민연금공단이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대우조선 경영진과의 만남을 꺼리는 것은 이번 사태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우조선 사태의 주요 이해 당사자들이 회사 경영을 정상화할 대책보다는 책임을 피할 방안을 찾는 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 트라우마 때문에 정부 부처들까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 만나지 않는 이유

26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 경영진과 회사 대주주인 산업은행 측 담당 임직원들은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기 전 수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측 견해를 듣기 위한 면담을 추진했다. 대우조선 회사채의 30%(3900억원)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자율적인 채무 재조정이 사실상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확정되면 논의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지난 21일 대우조선 경영진과 국민연금 운용역 간 정기 면담에서도 “채무 재조정 방안을 사전에 설명하겠다”는 대우조선 측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향후 면담 일정도 정하지 않았다.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으로선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사전 일정 등으로 회사 측과 면담 일정을 잡지 못했으며 이른 시일 내 면담할 계획”이라며 “정부의 채무 재조정 방안에 대한 동의 또는 반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우조선 안팎에서는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지원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미팅을 거절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 연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개인 돈을 투자했더라도 그러겠느냐”고 반문했다.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공단 등 다른 연기금은 정부안 발표 전후 경영진과 미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홍역을 치른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전에 만났다는 이유 등으로 국회와 검찰 등에서 집중 조사를 받은 뒤 불구속 기소됐다.

씨앤앰 구조조정 땐 긴밀 논의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의 일 처리도 매끄럽지 않다는 후문이다. 구조조정을 좌우할 핵심 투자자였다면 ‘설득’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내 3위 케이블TV 업체 딜라이브(옛 씨앤앰) 구조조정은 4개월 이상을 끈 채무 조정 논의에 국민연금 실무진이 모두 참여했다. 국민연금 내부 회의에서 두 차례나 부결되는 진통을 겪으면서 최종적으로는 채무 재조정 안이 통과됐다. 국민연금 측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정부에 다른 제안을 한다고 해서 현재 안이 바뀔 수 있겠느냐”며 “산업은행이 면피 차원에서 국민연금 견해를 듣겠다고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우조선 안팎에서는 국민연금, 산업은행뿐 아니라 정부 부처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정부안이 발표되기 전 두 차례 장관급 관계부처회의에 주형환 장관이 통상자문위원회 등의 참석을 이유로 불참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회의에선 “대우조선의 법정관리 시 예상 부실액에 대해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 산업부와 금융위의 불협화음이 잦다는 이야기도 있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최종 책임을 지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우조선의 투자 손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 논의에 관여했다 구속당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P-플랜

사전 회생계획 제도(pre-packaged plan). 법원 주도의 법정관리와 채권단 중심의 워크아웃 장점을 합친 기업 구조조정 제도. 법원이 강제 채무조정을 한 뒤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지원해 기업을 정상화한다.

좌동욱/김일규/안대규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