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저성장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한국의 경제성장에 오래전부터 빨간불이 켜졌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말만 많았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노력은 별반 하지 않았다. 오는 5월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의 유력 주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눈에 띄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 10%대를 정점으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이며 2000년대에는 4%대로 급격히 하락했다. 최근 5년은 실질적으로 2%대 성장에 머물렀다. 물론 한국의 커진 경제 규모와 전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 등으로 인한 요인도 존재한다. 여러 연구기관과 정부에서 지적한 것처럼 낮은 생산성, 생산가능인구 감소, 경직된 노동시장 등 여러 거시적 요인이 저성장의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 저성장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제조업과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지한 채 중국에 너무 의존했고 경제환경 변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이 경제성장률 하락의 더 큰 원인일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이런 구조적 요인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모형으로 진화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에 기대 기존 성장모형에 안주한 결과가 현재의 성장위기를 만들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저생산성, 저출산, 고령화, 노동시장 경직성 등 거시적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뿐만 아니라 제조업 중심, 대기업 중심이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란 메가트렌드를 고려한 대안제시가 이뤄져야 한다.

제조업 중심을 벗어나 서비스업이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이 돼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은 외환위기 당시 맥킨지 등 세계적 컨설팅회사들이 이미 지적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서비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0%, 고용의 70%를 담당하지만 아직도 음식점, 숙박 등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비중이 높다. 지식정보 기반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이 가능하다면 저성장에 시달리는 우리경제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모형 또한 바뀌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체 매출규모는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물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이 대기업을 때리는 정책으로 변질돼서는 안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경제성장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모험이 수반되지만 큰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산업에서는 스타트업 중심의 중소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업 및 제조업에 성장의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2015년 한국의 ICT산업 수출은 전체 산업 수출의 32.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3위 수준이다. 이는 우리의 ICT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이 있으며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ICT산업으로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ICT산업에의 집중은 4차 산업혁명 물결에도 선도적으로 올라탈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이 제대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 정부, 정치권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기업들은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개념디자인 역량’을 축적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환경의 ‘빅뱅적 변화’를 통해 기업의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개념디자인 역량 축적의 근본이 되는 학교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교 및 대학의 평준화 정책 등은 구시대의 프레임일 뿐이다. 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변화를 이끌 것을 정치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조명현 < 고려대·경영학,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객원논설위원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