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수학자들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여러 도시를 도는 방법을 찾는 외판원 문제를 통해 효율적 원전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리 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수학자들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여러 도시를 도는 방법을 찾는 외판원 문제를 통해 효율적 원전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와 2호기에는 각각 121개 핵연료봉이 들어간다. 발전소 측은 18개월마다 계획예방정비를 하면서 연료봉을 꺼내 옆 건물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로 옮긴다. 다음 가동에 앞서 매번 이들 핵연료 중 33개에 넣어둔 핵물질 관리용 삽입체를 다른 핵연료봉에 바꿔 넣는 절차를 밟는다. 경우의 수만 33!(팩토리얼)로, 10의 37제곱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고 시간도 그만큼 오래 걸린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진은 지난해부터 한국수력원자력과 공동 연구를 통해 삽입체를 가장 짧은 거리, 최단 시간에 옮기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지난 24일 경기 판교 수리연 산하 산업수학혁신센터에서 열린 개소 1년 기념 워크숍에서 소개했다.

연구진은 수학자들이 1920년대부터 관심을 가진 ‘외판원 문제(TSP)’에서 해결점을 찾았다. 마케팅 회사에서 외판원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여러 도시를 모두 돌아다니는 최적의 방안을 찾는 이론이다. 1954년 미국에서 49개 도시를 다니는 외판원 문제가 처음 해결됐고 2004년 스웨덴에서 2만4978개 마을을 돌아다니는 문제가 풀렸다. 이 문제는 물리학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갖는 상태를 찾는 연구와 직결된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가장 적은 에너지를 쓰는 방법을 찾는 분야다.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기존 연료봉 33개와 새 연료봉 33개 사이를 최소 거리로 움직이는 고리 모양 경로(루프)를 찾았다. 한수원 측은 “최소 경로와 위치를 활용해 삽입체를 옮길 경우 정비 기간을 줄일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발전소 운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외판원 문제는 전자회사에서 전자기판에 드릴이 최단거리로 움직일 공정을 찾거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후보가 수백 곳을 도는 유세 일정을 짤 때도 활용된다.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타키온테크도 수학으로 도움을 얻은 사례다. 이 회사는 수학자들과 함께 컴퓨터수치제어(CNC) 절삭기기에서 불량을 감지하는 알고리즘을 개선했다. 한 변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함에 따라 다른 변수가 증감할 때 두 관계를 나타내는 수학적 척도인 ‘상관관계’, 두 집단의 차이를 알아보는 ‘콜모고로프 스미르노프 검정’ 방법을 이용했다.

이 방법은 대도시와 중소 도시매장 가운데 어느 쪽 생산성이 떨어지는지 알아보는 데도 활용한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통해 90%에 머물던 불량률 검출률을 95%로 끌어올렸다. 이 밖에 리크루팅 회사인 스마트소셜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나타난 직무선호도, 필수자격, 위치, 연봉 등을 기준으로 구직자와 기업을 정확히 연결하는 수학 알고리즘과 맞춤형 리쿠르팅 게놈지도를 개발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