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제안(작년 10월)으로 탄력받았던 삼성전자의 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이 ‘최순실 사태’ 여파로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정치권이 재벌 개혁에 고삐를 당기면서 성공 가능성이 낮아져서다.

◆최순실 여파…지주사 설립 보류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설립은 2013년 말부터 진행돼온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이다. 삼성은 ①오너일가 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옛 에버랜드)과 삼성전자 지분 4.25%를 보유한 삼성물산을 합병하고 ②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③그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해 삼성지주회사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삼성전자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 12.8%(2016년 9월 말 기준)를 지주회사에 넘겨주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삼성전자 사업회사에 대한 오너일가 지배권을 그만큼 높일 수 있어서다.

이재용 부재·정치권 태클…3년 추진한 '삼성 지주사' 길을 잃다
하지만 작년 6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엘리엇 사태로 홍역을 치른 뒤 삼성전자 분할 작업은 탄력을 잃었다. 그러다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작년 10월 엘리엇이 갑작스레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설립을 제안해온 것. 삼성전자는 같은 해 11월 “지주회사 전환 여부를 향후 6개월간 검토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올 3월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최순실 사태가 걸림돌로 돌출했다. 특검 수사로 지난달 이 부회장이 구속돼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결단을 내릴 사람이 없어졌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측에 뇌물을 주고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한 갈래였던 삼성물산 합병을 성사시켰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설립에 나서면 이 부회장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정국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간 것도 어려워진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지난 15일 자사주의결권 제한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 통과를 재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기업이 인적분할할 때 자사주에 분할 신주를 배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한다면 정치권의 상법개정안 통과는 더 탄력받을 것”이라며 “법이 바뀌어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다면 분할해도 대주주 지분율을 높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12.8%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분할을 통해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사업회사 지분 12.8%를 확보할 수 있지만, 법이 개정되면 불가능하다. 분할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대안 없어…지주사 포기는 안 할 듯

안정된 지배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그룹을 지배하려면 다른 주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꾸준히 실적을 내고 이를 배당 등으로 나눠주는 한편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엘리엇 파동을 겪은 2015년부터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있다. 2015년 말 11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발표한 데 이어 작년 11월 대규모 주주환원 방안을 내놨다.

권오현 부회장은 24일 주주총회에서 “전년 대비 30% 증가한 4조원 규모의 배당, 총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분기배당 등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배구조 혁신은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상황이 달라지면 분할 및 지주회사 설립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