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명의를 빌려준 ‘형식상 주주’라도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다면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실제 주주가 아닌 ‘명의 주주’는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자·전기제품 제조회사 A사의 주주 황모씨(55)가 회사를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깨고 23일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A사는 2014년 3월 정기 주총을 열어 이모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그러자 주주인 황씨는 결의 방법 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주총 결의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회사는 황씨가 형식상 주주에 불과하다며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황씨가 강모씨의 돈으로 주식을 인수했기 때문에 기존 판례에 따라 황씨는 주주가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사가 실제 주식을 인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와 상관 없이 주주명부상 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부인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타인을 주주명부에 주주로 기재한 것은 적어도 주주명부상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를 허용하거나 받아들이려는 의사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날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다른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주총 결의로 선임된 이사는 회사와 별도의 임용계약을 맺지 않아도 법적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회사와 임용계약을 맺지 않으면 이사의 지위를 취득했다고 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는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자·전기제품 제조회사 B사의 주총에서 이사로 선임된 이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이사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사·감사의 법적 지위가 별도의 임용계약이 체결돼야 인정된다고 보는 것은 이사·감사 선임을 주총의 전속적 권한으로 규정한 상법 취지에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