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영국 의사당 풍경
템스강변의 빅벤 시계탑으로 유명한 영국 의사당. 웨스트민스터궁이라는 이름처럼 한때 궁전으로 쓰인 곳이다. 이 건물 남쪽에 상원, 북쪽에 하원 의사당이 있다. 웅장한 외형에 비해 의원들이 모이는 방은 좁다. 우리 국회 격인 하원 의사당은 길이 21m에 폭 14m. 약 89평에 불과하다. 그러니 의원 650명 중 3분의 1은 자리도 없다. 400여명이 촘촘히 앉을 수 있는 의자는 먼저 온 사람 차지다. 총리 의자도 따로 없다. 근대 의회 민주주의 발상지치고는 놀랍다.

의장석을 기준으로 여당은 오른쪽, 야당은 왼쪽에 앉는 게 특이하다. 그 사이에 넓은 사각 책상을 두고 두 진영이 마주 보며 발언한다. 때로는 야유와 환호가 난무한다. 분위기가 과열되면 의장이 중재에 나서지만 대부분은 신사답게 합의한다. 의결 방식도 독특하다. 비밀투표가 없다. 대부분 안건은 의장의 찬반 질문에 의원들의 ‘예’ ‘아니오’ 표시로 결정된다. 만장일치가 아닐 땐 몇 시간이고 토론하고, 끝까지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수결 원칙으로 처리한다.

옛날에는 육탄전도 불사했다고 한다. 칼로 혈투를 벌인 적까지 있다. 그래서 양측 사이의 거리를 칼 두 개 길이만큼 띄워놨다. 그 표시로 앞줄에 앉은 의원들 바로 앞 바닥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다. 아무리 격렬한 대립에도 이 선은 넘지 말자는 것이다. 요즘이야 대의민주주의 모범생답게 몸싸움은 안 한다. 그 대신 말싸움은 현란할 정도다. 밤새 끝장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하나, 영국 총리는 매주 수요일 이곳에 나와 30분간 모든 의원의 질문에 답한다. 법으로 강제된 건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지켜 온 관습이고 의무다. 질의답변 장면은 생방송으로 중계된다. 실시간으로 유튜브에도 오른다. 내용이 워낙 재미있어 ‘의회 영상’이 조회수 1위를 차지할 때도 많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해 처음 등판했을 때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와 펼친 불꽃 대결도 인기였다. 코빈이 부도덕한 고용주 밑의 노동자 얘기를 꺼내자 “규정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라면 많은 (노동당) 의원들에게 익숙할 것 같다”며 그의 경선 반칙을 꼬집은 뒤 “누군지 상기시켜 줄까요”라고 되물어 폭소를 자아냈다. 테러가 발생한 그저께도 메이의 수요문답이 진행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후손이어서 그럴까.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과 토론, 환호와 야유 속에서도 넘치는 위트와 유머…. 굳이 우리 국회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들의 내공과 경륜이 부럽기만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