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근로시간 단축?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대통령 선거일이 턱밑까지 온 모양이다.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노동계에 추파를 던지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엔 원내교섭단체 4당이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답답한 사람들이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줄인 만큼 고용이 늘어난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초등학생 수준의 어림셈이다. 근로자의 천국이라는 프랑스 사례가 타산지석이다. 프랑스는 17년 전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지만 고용은 늘지 않았다. 고용률은 10여년째 제자리다. 오히려 신규 고용의 80% 이상이 3개월 이하 초단기 계약으로 메워졌다. 고용의 질만 나빠졌다는 얘기다. 만성 경기 침체와 투자 부진이라는 부작용 탓에 근로자의 생활만 더 어려워졌다. 지난해 근로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 늘린 이유다.

근로시간을 무턱대고 줄인다고 고용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생산성이 개선돼 기업의 경쟁력이 강해지면 설비 투자를 할 수 있고 신규 고용 창출이 이뤄진다. 그게 선순환이다.

산업계는 난리다. 강성 노조가 임금 축소에 동의해줄 리 없다. 그 임금 그대로 근로시간 감축 혜택만 보려들 게 뻔하다. ‘귀족 노조’만 배를 불리고 정작 보호받아야 할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로자만 늘어날 뿐이다. 정치인들에겐 우이독경이다. 노동계의 표를 쥐고 있다는 소위 ‘노동 귀족’들을 끌어들여야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위인들이다.

‘노련한 조합원들은 서로 담합해서 아예 옆 동료의 몫까지 4시간 뛰고 4시간은 쉰다. 주간 8시간 맞교대가 아니라 주간 4시간 맞교대다. 쉬는 동안 스마트폰은 둘도 없는 친구다.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즐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얼마 전 저서 《가 보지 않은 길》에서 현대자동차 귀족 노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소위 ‘야리키리(‘해치운다’는 일본말)’면 반나절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이런 식으로 종일 일한다. 오죽하면 현대차 국내 공장의 근로자는 해외 현지 공장의 높은 생산성을 편취하고 국내 작은 공장의 생산성에 편승하고 있다고 했겠는가.

한국의 생산성은 바닥 수준이다. 생산성이 높다는 노르웨이 근로자가 한 시간이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한국 근로자는 세 시간이나 걸린다. 일하는 방식이 크게 잘못돼 있어서다.

사무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야근을 전제해 천천히 일하면서 술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제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얼마 전 한 대기업 신입사원이 회사를 그만두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겨 화제가 된 신랄한 비판이다.

근로의식을 회복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기업과 근로자의 변화가 중요하지만 정치가 돕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귀족 노조 개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요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느라 소란스럽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아예 ‘일하는 방식 개혁담당 장관’ 자리를 신설하고 올해를 ‘일하는 방식 개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일본의 올해 캐치프레이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해소하고 근무 방식을 개선하는 것부터 과제다. 근무 사이에 일정 시간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 재택근무, 유연근무, 휴가제도 개선 등 관련 정책이 쏟아진다. 노동시간 단축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처럼 막무가내가 아니다. 합리적인 선에서 시간 외 근로의 상한을 긋는다. 정부는 지원 체계를 갖추고 컨설팅은 물론 기업이 효과적으로 계획을 이행하면 지원금을 지급한다. 산업계의 자발적인 동참이 중요해서다. 올해 이 분야에 배정한 예산만도 약 1조원이다.

일본이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은 단순히 근로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야 일과 가정의 양립,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어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라는 게 아베의 생각이다.

불법 파업을 일삼으면서도 생산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급여를 받아 챙기는 게 한국의 귀족 노조다. 대선주자들은 노동 개혁은커녕 일하는 방식 개혁에 대한 개념조차 없이 노조에 아양이나 떨고 있다. 성장은 없다. 미래가 어두울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