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상식과 반상식
요즘 어느 자리를 가나 나라 살림 걱정이다. 소비절벽에 이어 소비 절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미국의 무역 보복조치 가능성까지 첩첩산중이다. 주식이 싸다 한들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음 정부 이후 경제 상황이나 국제정세가 돌아가는 형세를 보고서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은행에 현금성 자산이 400조원 대기하고 있다는 보도가 우연이 아니다. 기업들도 투자와 채용을 미룬다. 사업전망도 불투명하고 탄핵정국 이후 불확실성도 높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난세(亂世)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어지러울 난(亂)자’에 ‘매우 뛰어나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전(字典)을 찾아보면 끝 단에 작게 설명돼 있어 대부분 지나치고 만다. 물론 난세에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하는 것이 ‘상식’이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형국도 모르고 뛰어다니다가는 힘만 들고 결과는 없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사실 세상이 잘 돌아가고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일 때는 돈 벌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불확실성이 매우 높을 때, 그리고 대부분 불안해하고 자신이 없을 때 기회를 잡아 과감한 액션을 취하는 것이 ‘반 상식’의 정석이다. 그래서 어지러울 ‘난’자에 ‘뛰어나다’라는 훈고가 생긴 이유다. 남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할 때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해야 승부가 이뤄진다.

또 하나의 반 상식적인 예를 들어보자. 이제 ‘상식’이 된 인구절벽 위기론이 있다. 작년 신생아 출산이 40만6300명으로 16년 만에 최저 수치로 떨어졌다. 올해는 인구 통계가 시작된 이후 최초로 30만명대로 주저앉는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여기에 인구의 14%가 65세 이상 노령층이고 생산가능인구는 작년을 기점으로 줄고 있다. 서울 시내에도 취학아동 부족으로 문 닫는 초등학교가 등장하고 지방대학들은 진학생 부족으로 이미 생존이 어렵다. 앞으로 군복무 인구가 줄어 안보도 걱정인데 생산인구 감소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참으로 암울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지당하신 주장이다. 하지만 이 상식적이고도 논리 정연한 분석의 틈새를 ‘반 상식적으로’ 살펴보면 나름 괜찮은 시나리오도 있다.

우선 생산가능인구의 개념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인구수가 얼마인지 사실 답이 없다. 세종 때 500만, 임진왜란 때 700만, 한일병합 때 1000만 인구가 100년 만에 남북한 재외동포까지 합쳐 8000만명으로 불었다. 과연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 좋은 일인가? 늘어나는 인구만큼의 환경과 각종 사회적 압력 및 마찰에 대한 준비는 돼 있을까? 인구 폭발과 인구 절벽 둘 다 답은 아니다. 적절한 규모의 인구관리가 정답이다. 현재 선진국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 않는 것은 어쩌면 적절한 ‘자연적인’ 조정일 수도 있다.

또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고 있는 것도 100세 시대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대에 결혼하면 70~80년 부부생활을 해야 한다. 잉꼬부부라도 대략 난감하다. 이웃 일본은 이미 젊은이들 부족으로 청년실업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최근 우리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유행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화를 맞춘다. 또 우리는 늘 통일과 북한 인구를 고려해야 한다.

현명한 투자는 항상 상식을 뒤집어 보는 ‘반 상식’에서 출발한다. 수년 전 대체에너지가 이슈일 때 워런 버핏은 사양산업인 석탄회사를 샀다. 친환경 에너지가 대세고 태양력과 풍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상식 앞에 버핏은 에너지산업 구조상 2050년까지는 기술적으로 석탄을 대체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지금 석탄값이 두 배 올랐다. 대권 관련주를 따라다니는 ‘비상식’이 아닌 ‘반 상식’인 생각을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