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사 14명 '문화여행' 스토리텔러로 나선다
충남 당진의 한 양조장. 커다란 술 항아리가 줄지어 놓인 단층 목조건물 안에서 막걸리 명인 김용세 씨(73)가 관광객에게 막걸리 빚는 과정을 설명한다. “우리 술은 정성입니다. 쌀 씻는 데만 30분이 걸리지요. 쌀알이 부서지지 않도록 손가락을 굽힌 채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쌀을 쪄낸 고두밥을 보여준다. 지역 특산물인 해나루쌀로 지은 밥이다. 관광객들은 명인의 술 이야기를 들으며 양조장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갓 발효된 술을 시음하고, 각자 막걸리 칵테일을 만들어 명인에게 평가받기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보인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명사여행) 상품의 하나다. 지역 명사들이 생생한 삶의 이야기와 함께 주변 관광지 역사와 명소, 전통문화를 알려준다. 이 상품으로 당진을 방문하면 1933년 지어진 신평양조장,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 서해 일출로 유명한 왜목마을, 한진포구, 아산온천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김씨를 비롯한 지역 명사 14명이 문화여행 스토리텔러로 나선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71)은 강원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어머니의 삶과 문학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봄이면 매화 풍경으로 유명한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에선 ‘매실 명인 1호’인 홍쌍리 대표(74)가 3000여개 장독이 놓인 청매실농원의 역사와 자신의 ‘매실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북 영양의 명사는 재령이씨 석계공파 13대 종부 조귀분 여사(68)다. 조선 중기부터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한국 전통 식문화를 소개한다.

흑유도예가 김시영 씨(59)는 강원 홍천에서 ‘까맣게 피어나는 흙과 불의 노래’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파독 간호사 출신 문화관광해설사인 석숙자 씨(70)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 모여 사는 ‘독일마을’이 있는 경남 남해 지역 명사로 뽑혔다. ‘커피의 전설’로 통하는 국내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씨(66)는 강원 강릉에서 행복한 커피인생에 대해, 농암종택 종손인 이성원 씨(64)는 경북 안동에서 300년 가문을 이끌어가는 종손의 이야기를, 최영욱 평사리문학관 관장(60)은 경남 하동에서 소설 ‘토지’의 땅을 일군 열정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친왕의 아들인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씨(황실문화재단 이사장·76)는 전북 전주에서 황손으로 태어나 서민으로 살아온 삶을 얘기하고, 진용선 아리랑센터 박물관장(54)은 강원 정선에서 아리랑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선물한다. 이철호 향제 줄풍류 명인(80)은 전남 구례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인생역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이호순 허브나라 농원 대표(74)는 강원 평창에서 귀농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명사 여행은 다른 여행 상품보다 가격이 두세 배 높다. 2박3일 상품이 약 100만원이다. 대신 명사와의 만남은 물론 주변 관광명소까지 아우른다. 지역별 특화관광을 통해 국내여행은 저가 상품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마련한 고품격 상품이라는 게 문체부의 설명이다. 지난 2월에는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이 상품으로 경남 밀양을 2박3일간 방문했다. 밀양 지역 명사인 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 명인(62)에게 백중놀이 춤사위와 밀양아리랑을 배우고, 영남알프스 등 주변 명소를 둘러봤다.

황명선 문체부 관광정책실장은 “인적 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요즘 관광산업의 흐름”이라며 “전국 지자체와 함께 더 많은 지역 명사를 발굴해 명사 여행을 여행업계 신성장동력 자원으로 꾸준히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