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섭 씨(가운데)가 미얀마에서 얼굴에 문신을 한 친(chin)족 할머니들과 웃고 있다.
신제섭 씨(가운데)가 미얀마에서 얼굴에 문신을 한 친(chin)족 할머니들과 웃고 있다.
“보기에 쉽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골프와 사진 모두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선 그이기에 궁금했다. 딸의 골프 인생에 ‘다걸기’한 전형적 골프 대디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변신한 신제섭 목사(57)를 처음 만났을 때 “골프 하던 분이 어떻게 사진도 하느냐”고 물었다. 식상한 우문에 그는 즉답을 내놨다.

신씨는 한국 여자 프로골퍼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신지애 프로(29)의 아버지다. 딸이 꿈을 이루던 2010년, 그는 “이젠 내 꿈을 꾸고 싶다”며 캐디백 대신 카메라를 잡았다. 그는 젊은 시절 사진을 찍기 위해 가출까지 감행한 사진광(狂)이었다.

“골프만큼이나 사진도 어려워요. 무엇을 왜 담을 것인가 생각하면 쉽게 셔터가 눌러지지 않거든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누구도 속 편히 즐기기만 할 수 없는 게 사진과 골프라는 얘기다. 잘하고 싶으면 더욱 어려워지는 것 또한 닮은꼴이다. 다른 점은 뭘까.

그는 “골프는 열심히 연습하면 결과로 드러나지만 사진은 잘 찍어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을 즐기는 대중이 많지 않으니 365일 작업에만 매달리는 전업 사진작가의 삶도 팍팍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약해요. 안드레아 거스키나 신디 셔먼 같은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은 40억~50억원을 호가합니다. 우리는 수백만원 받기도 힘들어요.”

‘1인자’를 키워낸 열정은 그의 인생 2막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목회자 재교육 단체인 성은선교센터 대표로, 광주대 대학원 사진영상학과 학생으로, 3남매를 둔 아버지로 1인3역을 하고 있다. ‘딸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뒤 그는 3학기를 남기고 포기한 대학(전남대 수의학과)에 복학해 2014년 이 대학의 최고령 졸업자가 됐다.

가족의 든든한 응원은 인생 2막을 사는 힘이다. 맏딸 신지애 프로는 “이왕 하는 김에 세계 최고가 되라”고 응원해줬고, 서울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둘째 딸(지원)은 카톡으로 “아빠 파이팅!”을 외쳐줬다. 고3에서 미국 대학의 2학년으로 월반 입학한 수학 영재 막내 아들(지훈)도 “작품이 너무 좋다”며 엄지를 들어줬다.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사라지는 인류문화의 가치다.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중구 반도카메라갤러리에서 여는 일곱 번째 사진전 ‘얼굴’에도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친(chin)족’ 여성들의 기구한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부족은 소녀들을 침략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10세가 된 여자 아이들의 얼굴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새겼다. 이제는 16명의 할머니들만이 남아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는 편도 40시간이 걸리는 친족 마을을 세 번이나 오간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침략, 배고픔과의 전쟁을 일상처럼 치르면서도 이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어요. 그 모습에서 한 번쯤은 새겨봐야 할 일상의 가치와 삶의 행복을 찾았으면 합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