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시한 일본 화장품, 아모레의 '빈 틈' 장악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일본 화장품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방사능 오염을 걱정한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이 틈을 타 국내 업체들은 급성장했다. 국내에 이어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아모레퍼시픽 등은 세계적 화장품 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 화장품 업체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작년 일본 화장품 수입금액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일본 화장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은 새벽부터 줄을 서고, 신규 브랜드는 속속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국내 화장품 업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색조 화장품시장은 다시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돌아온 J뷰티

일본 화장품 수입액은 2011년 2억2787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해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4년 1억6274만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작년 일제 화장품 수입액은 2억961만달러를 기록했다. 2010년 수입액에 근접했다. ‘J뷰티의 반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작년 일본산 수입 증가율은 22.8%에 달했다. 주요 수입국(미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영국) 중 가장 높다.

색조 화장품 시장만 보면 일본색이 더 짙어진다. 일본 색조 화장품(품목분류상 메이크업용 제품류) 수입액은 작년 1962만달러로 2015년보다 92.3% 뛰었다. 미국 색조 화장품 수입액(1093만달러)을 앞질렀다. 같은 기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화장품 수입은 0.2~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 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본 2위 화장품 대기업 가네보 계열 브랜드인 루나솔과 RMK가 대표적이다. 면세점에서만 판매하는 루나솔은 작년 펄 아이섀도 매출이 2015년에 비해 129% 뛰었다. 같은 기간 RMK는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매출이 140% 증가했다. RMK는 올 상반기 서울 영등포에 백화점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작년 5월 신세계면세점에 입점해 ‘대박’을 낸 색조 화장품 브랜드 어딕션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대구점에도 매장을 열었다.

다른 업체들도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색조 화장품 브랜드 스쿠(SUQQU·사진)는 20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에 입점한다. 쓰리(THREE)는 4월 롯데면세점에 매장을 낼 계획이다. 이들 브랜드는 모두 일본 화장품 대기업 계열사다. 스쿠는 가네보 계열이고 쓰리는 4위 업체인 폴라 오르비스의 자회사 아크로(ACRO) 소속 브랜드다.
색(色)시한 일본 화장품, 아모레의 '빈 틈' 장악
◆미국 화장품 대체

일본 화장품 기업들이 반격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내에 경쟁력 있는 색조 화장품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기초 화장품에 비해 경쟁력이 턱없이 떨어진다. 한 화장품업체 최고경영자(CEO)는 “기초 화장품과 달리 색조 화장품은 문화와 스타일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패션산업과 비슷하다”며 “국내 업체들은 유행을 선도하기보다 해외 제품을 모방한 뒤 저렴하게 출시하는 사업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제품은 색상을 부드럽게 표현해줘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메이크업에 어울린다는 장점도 있다. 박상아 신세계면세점 뷰티 상품기획자(MD)는 “색감이 강렬하고 섹시한 인상을 강조하는 서양 브랜드에 비해 일본 색조 화장품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앞세워 소비자들이 친근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소비자들이 색조 화장품을 구입할 때는 얼굴에 직접 흡수시키는 기초 화장품에 비해 방사능 걱정을 하지 않아 일본 브랜드가 이 시장에 파고들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일본 화장품 업체들이 한국 브랜드에 큰 위협이 되진 않는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래 색조 화장품 시장은 수입 업체들이 선도해왔다”며 “원전 사태 이후에도 국내 색조 화장품 시장의 지배자는 에스티로더 로레알 등 해외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