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위기 불감증
지하철에서 비상전화로 장난치는 아들을 본 엄마. “그걸로 장난치면 어떡해. 너 늑대소년 이야기 몰라?”라고 꾸짖는다. 그러자 아들은 “늑대소년이 아니라 양치기 소년. 늑대소년은 송중기고”라고 비아냥거린다. 화가 난 엄마는 “너 그걸로 장난치면 나중에 정말 급할 때 아저씨가 와? 안 와?”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아들은 아랑곳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한다. “와야지. 어쩌겠어.” 이 소리에 같이 타고 있던 승객들과 엄마가 빵 터진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아들 혼내기에 실패한 한 엄마의 이야기다.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의 앞날에 우려를 나타내는 외국인이 많다. 지난 6개월간 국민이 겪은 고통과 희생은 컸지만 더 나은 미래로 가야 하는 길이라면 피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조심스러운 위로의 말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경제 상황은 급박하기만 하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치졸하지만 일사불란한 보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와 대우조선의 회사채 만기에 근거해서 뜬금없이 나온 4월 위기설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인상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국내 소비 여력을 잠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한국 경제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산업 경쟁을 감당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극심한 내수 침체 속에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경제체력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면 싹 사라질 것이라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의 공백 탓에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 추진은 요원하기만 하다. “늑대가 온다”는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뭐 어쩌겠어”라고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이사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선임 제한 및 다중대표 소송, 자기주식 규제 등을 규정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탄핵정국 와중이어서 야당이 법안 통과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지만 대선정국에서 재계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선명성 경쟁이라도 벌어지면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통과될 공산이 크다. 재벌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는 상법 개정안은 상장기업의 86%를 차지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 역공을 맞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상법은 기업을 옥죄는 법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법이다. 그런 상법을 개정해 대기업을 억눌러서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수출은 2016년 11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수출 단가와 수출 물량도 증가해 수출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게 한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구조적 상황이 여전한 가운데 구조조정 영향으로 경제의 고용 창출력이 붕괴될 위험마저 보인다. 게다가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모두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요인으로 2016년 11월 증가세로 전환한 이후 그 증가폭이 커지고 있고, 생활물가를 중심으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들어 1월과 2월 2% 수준으로 올랐으며, 생활물가 상승률은 작년 12월 1.2%에서 올 1월과 2월 각각 2.4%, 2.3%로 급등했다. 설사 경기가 회복 궤도에 올라선다 하더라도 서민 생활은 여전히 팍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러다가는 극심한 정치사회 갈등에 휘말려 단번에 빈곤국가로 떨어진 아시아와 중남미 몇몇 나라 꼴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 경제는 위기”라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경고가 그치지 않고 있지만 대부분은 “뭐 어떻게 되겠지”라고 무덤덤해 하는 표정들이다. 그렇게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다가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맞닥뜨릴까 걱정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