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그녀'를 위한 변명 (2)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앞에는 돌진하는 모습을 한 황소상이 서 있다. 지난 7일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그 앞에 새로 소녀상이 세워졌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당당히 황소상을 마주 보고 있는 이 조각상에는 ‘그녀(SHE)’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 사회에서 ‘그녀’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수난은 광복 이후 전개된 일본어투 추방 운동과 맞물려 있었다. 국어순화운동전국연합회는 1974년 외래어에 물든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고 제안하면서 첫 번째 대상으로 ‘그녀’를 지목했다. 1978년 유정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일본어과 교수가 학교 논문집에서 ‘그녀’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일본식 억지 조어라는 게 요지였다. 이런 내용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자 실명이 거론된 소설가 김동리 씨가 즉각 반론을 폈다. “말은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는 주장이었다.

1990년대에 논쟁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차별어에 대한 인식이 대두했다. 인권의식이 싹트면서 그녀가 대표적인 성 차별어란 지적이 나왔다. 남녀 구별 없이 ‘그’를 써도 충분한데 굳이 ‘녀’를 붙여 여성을 차별한다는 주장이었다. 작가 김원우 씨는 소설 《세자매 이야기》(1988년 간)에서 의도적으로 ‘그’를 사용했다. “여성들이 남성이 만든 제도적 구속, 상대적 열등감에 얼마나 시달리는지를 그리고 싶었다. 여성 3인칭 대명사 ‘그녀’를 거부하고 ‘그’로 한 것도 작의(作意)의 하나다.” 1993년 한 신문에서 밝힌 작가의 말이다.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이었다. 우리말 운동가들이 가세했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녀’ 대신 ‘그’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은 또 한 번 진화했다. 여성을 가리키는 특정어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성을 더 부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녀’가 우리 곁에 다가온 지 100여년이 흘렀지만 호적에 이름을 올린 지는 20여년이 채 안 된다.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1991년)이나 금성판 《국어대사전》(1995년)에서도 ‘그녀’는 찾을 수 없다. 3인칭 대명사로는 ‘그’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19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비로소 표준어 대접을 받았다. 국립국어원에서 현실언어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줄 때가 됐다. 일본어투니, 차별어니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편견의 사슬일지 모른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