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 Point] 늘어나는 '햄릿 증후군'…큐레이션 세계는 무궁무진
뉴욕타임스로부터 유니콘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선정된 업체가 있다. 2011년 설립돼 회원 수 10만명, 연 매출 3000억원을 올리는 ‘스티치픽스(Stitch Fix)’다.

패션업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이 기업은 고객이 20달러를 지급하면 인공지능(AI)과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고객에 맞는 스타일링 아이템 다섯 개를 원하는 날짜에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그 가운데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나머지 제품은 무료로 반품된다. 제품을 구매하면 아이템 추천료로 지급한 20달러도 되돌려 받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 쇼핑몰엔 어떤 옷의 사진도 모델도 없다는 것이다.

블랙 드레스가 필요해 쇼핑몰을 찾다가 수백 장의 사진에 지친 창업자 카트리나 레이크는 내가 필요한 것은 “전 남자 친구 결혼식에 갔을 때 내가 멋지게 보일 딱 한 벌이다. 그런데 그걸 누가 추천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스티치픽스를 세웠다”고 했다. 80%의 고객이 추천한 옷 중 하나를 구매하고, 80%의 고객이 첫 구매 후 90일 내 재구매할 정도로 이 서비스는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말 네이버도 AI를 이용해 감성적인 키워드별로 아이템을 보여주는 ‘스타일 추천’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존의 가격, 브랜드 색상과 같은 정형화된 속성이 아니라 ‘러블리’ ‘화려한’ ‘여신룩’ 등과 같은 감성적인 단어들을 통해 상품을 추천해 주는 것이다.

큐레이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큐레이션은 예술 작품의 수집·전시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큐레이터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큐레이터처럼 이용자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수집·정리해 고객에게 추천하고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업계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4차 산업혁명 여파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급격히 증가하면 ‘개인의 결정 마비’ ‘햄릿 증후군’ 현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큐레이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차별화된 큐레이션 서비스를 위해 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우선 빅데이터 속에서 의미 있는 통찰을 찾을 수 있는 인사이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데이터가 행동으로, 다시 고객 경험으로 연결되는 인사이트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빅데이터는 단지 데이터를 모아 놓은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많고 평평한 데이터 속에서 가치가 높은 고객에게 집중하고, 고객에 대한 데이터의 통합을 통해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인사이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마존과 구글이 개척자고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이 인사이트 마스터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AI와 협업할 사람의 존재다. 스티치픽스를 보면 4400명의 직원 중 2800명이 전문 스타일리스트다. AI가 고객의 스타일, 색상, 패턴 선호, 사는 곳, 색상, 날씨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제안하지만 마지막 창의적 결정은 스타일리스트 몫이다.

마지막으로 적용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선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 큐레이션이 일상화되지 않은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하고 개인화된 영역, 그러나 사람들이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영역을 찾아서 선점하면 어떨까. 각 개인의 DNA나 병력, 건강 상태에 기반한 맞춤형 식단, 영양제에 대한 추천 등 아직 큐레이션 서비스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어딘지 생각해 보자.

아마존의 AI 비서 알렉사를 통해 음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스킬(스마트폰의 모바일 앱과 같은) 수가 이미 1만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알렉사 중심의 앱(응용프로그램)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에 접어들고 있다는 이야기고,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AI가 아주 빠르게 우리 곁으로 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큐레이션을 ‘선택의 아웃소싱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아웃소싱하겠다는 선택도 의지도 인식도 없이, 빅데이터와 AI가 나의 경험과 생각도 큐레이션시키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

전창록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