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발효 5년] 수입 폭증·농업 황폐화·맹장수술 1000만원? FTA 반론 '모두 거짓'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7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한·미 FTA는 한국으로 균형추가 쏠린 ‘불평등 협정’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불과 수년 전 한국에서 ‘한·미 FTA는 미국에 종속적인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주장이 횡행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한·미 FTA는 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와 마찬가지로 출발이 순탄치 않았다. 협상 추진이 발표된 2006년부터 국회 비준이 마무리된 2011년까지 한국 사회는 한·미 FTA 찬반을 놓고 둘로 쪼개졌다. 정치권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 현 상태에서 비준하는 건 결단코 반대한다”(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양국의 이익균형이 깨진 FTA”(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 “한·미 FTA는 21세기판 을사늑약”(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 등의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FTA 발효 5년이 된 지금, 당시 반대론자들의 주장 대부분은 근거가 박약한 ‘괴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2007년 펴낸 ‘한·미 FTA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에 담긴 대표적인 반대 논리를 여덟 가지로 정리해 점검한다.

(1) “수출보다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다”

범국본은 “한국의 관세 인하폭이 미국보다 다섯 배 정도 더 크기 때문에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정반대다. FTA 발효 전인 2011년 562억달러였던 대미 수출은 지난해 665억달러로 18.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446억달러에서 432억달러로 되레 3% 감소했다. FTA 발효 후 5년간(2012~2016년) 대미 수출은 연평균 3.4%씩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수출실적이 부진(-2.3%)했던 점을 고려하면 뛰어난 성과다.

(2) “자동차 수출은 확실히 감소한다”

FTA 반대 진영에서는 “정부가 이익을 많이 볼 것이라 강조하는 자동차는 수출 감소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2011년 89억달러였던 대미 자동차 수출은 지난해 160억달러로 79.7% 급증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233억달러 중 자동차 교역 흑자는 143억달러로 전체의 61.3%에 달했다.

(3) “한국 농업은 황폐화될 것이다”

“농업의 경우 무모한 개방을 했기 때문에 15년쯤 뒤에는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에서 수입한 농축산물(임산물 포함)은 71억8200만달러 규모로, 발효 전 5년간(2007~2011년) 연평균 수입액 62억9500만달러보다 14.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오히려 농축산물의 대미 수출이 지난해 7억1800만달러로 발효 전(3억9900만달러)보다 80%가량 증가했다.

(4)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 영화 붕괴”

범국본은 한·미 FTA 협상 선결조건으로 미국과 합의한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멕시코나 대만 등의 선례처럼 자국 영화 붕괴와 할리우드 영화 독점 강화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관론은 ‘기우’였다. 한국영화 점유율(상영작 관객수 기준)은 스크린쿼터 축소 직후인 2008년 42.1%까지 떨어졌으나 2011년 이후 다시 50%대를 회복했다. 한국영화 수출액은 작년에 사상 처음 4000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순항 중이다.

(5) “ISD 무차별 제기로 정책 무력화”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는 미국식 FTA에만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게 반대 진영의 논리였다. “헌법상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을 무너뜨리고 정부는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국 기업이 한·미 FTA에 근거해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는 론스타(2012년)와 다야니(2015년), 하노칼(2015년) 등 3건이 있었다. 모두 FTA가 아니라 상대국과의 투자보장협정(BIT)을 근거로 제기된 것들이다. 한국은 이미 78개국과 BIT를 맺고 있다.

(6) “미국산 소고기로 광우병 창궐한다”

범국본은 “FTA가 체결되면 광우병 소고기가 우리 식탁을 점령할 것”이라며 “우리 아이들을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했다. 2008년엔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는 결국 ‘괴담’으로 판명 났다. 2008년부터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광우병 발생 사례는 없었다. 광우병 우려가 과장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액은 2011년 6억9600만달러에서 지난해 10억540만달러로 53.6% 늘었다.

(7) “맹장수술비 1000만원까지 오른다”

의료분야에 대한 악담도 쏟아졌다. 반대 진영은 “FTA는 미국식 의료제도 도입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지금도 엉망인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마저 완전히 파괴해 결국은 맹장염 수술비 1000만원인 나라, 병에 걸려도 돈이 없으면 아예 병원 문턱도 못 넘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건강보험제도는 아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맹장 수술로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6인실 기준 2012년 41만원에서 지난해 45만원으로 4만원 올랐을 뿐이다.

(8) “수도 등 공공요금 폭등한다”

“FTA로 철도·전기·수도·가스 등이 민영화되면 멕시코에서 철도가 끊어지고 볼리비아 등에서 물값이 폭등한 것 같은 상황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공공분야는 애초 FTA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 환경부가 지난달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수돗물 평균 요금은 ㎥당 683.4원으로 FTA 발효 전인 2011년 619.3원에 비해 64.1원(10.3%) 오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결국 허구로 드러날 이런 주장들에 한국 사회가 수년간 휘둘리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당시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보면 참 터무니없다 싶은 주장이 많았다”면서 “(일부 반대 측 학자 등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해답이 보이는 것들을 계속 왜곡된 형태로 국민들에게 알렸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런 혼란이 과연 국민들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되묻고 싶다”며 “차분히 앉아서 합리적 대책을 수립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판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