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효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국회에서는 더욱 강화된 유통 규제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한경DB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효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국회에서는 더욱 강화된 유통 규제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한경DB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일요일이면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아울렛이나 복합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매출이 80%가 넘는 시내면세점도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 밤 12시 이후엔 편의점도 영업할 수 없다. 대규모 유통시설 개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인근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꿈도 꾸지 마라.’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산업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 생기는 변화다. 이대로라면 일요일과 명절엔 오프라인 쇼핑을 할 수 없고, 밤 12시 이후엔 편의점도 이용할 수 없다. 특정 시간에 쇼핑이 금지되는 ‘쇼핑 블랙아웃’이 현실화된다.

◆유통 규제 강화로 돌아선 한국당

대형마트들은 2012년 3월 이후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쉬고 있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한 곳이 대부분이다. 대형마트들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와 지자체들은 요지부동이다. 다수의 소비자보다 ‘목소리가 큰’ 전통시장 상인과 자영업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오히려 더 강한 규제를 내놓고 있다.

예전엔 여야 간 의견 대립이라도 있었지만 20대 국회에선 모든 정당이 한목소리로 유통 규제 강화를 외치고 있다. 그동안 유통 규제를 풀자고 한 자유한국당이 오히려 다른 당보다 더 센 규제를 주장한다. 한국당은 지난달 골목상권 보호 정책을 발표하면서 대형마트에 적용 중인 의무휴업을 복합쇼핑몰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이 복합쇼핑몰을 늘리면서 주변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복합쇼핑몰 상권영향평가를 강화해 출점 요건을 까다롭게 하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법안보다 더 세다. 한국당은 대형마트 같은 대규모 점포를 낼 때 등록 후 지자체와 협의하는 현행 등록제를 사전에 지자체의 허가를 받는 허가제로 전환하는 법안도 내놨다.

편의점 심야영업 규제도 민주당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한국당은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을 개정해 편의점의 심야시간(밤 12시~오전 6시) 영업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 편의점이 과도하게 몰리는 걸 막기 위해 편의점 간 영업거리 제한 기준을 새로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민주당도 편의점 영업 지역을 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심야영업 금지는 주장하지 않고 있다. 한국당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편의점 영업 시간 제한을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지만 정책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소비자 소외된 유통규제 5년] 아울렛까지 일요일 쉬면 '쇼핑 블랙아웃'…편의점도 밤 12시 문 닫을 판
◆민주당 “더 센 규제 내놓을 것”

유통 규제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한 곳은 민주당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법 개정안 20개 중 9개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법안이다. 대부분 대형마트 영업 및 출점 규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수를 월 2회에서 월 4회로 늘리는 방안(이언주 의원)이나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아 SSM처럼 영업하면서도 영업 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상품공급점도 의무휴업을 하게 하는 방안(홍익표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5월 대선 이후 더 강한 유통 규제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한국당이 겉으론 유통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처럼 골목상권 보호에 별 관심이 없다”며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꾸려지면 전통시장과 자영업자들을 확실히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새 법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뿐 아니라 면세점과 농협하나로마트까지 대형마트와 같은 의무휴업 대상으로 묶어야 한다는 법안(김종훈 무소속 의원)보다 강도 높은 규제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유통 규제를 강화하면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유통 관련 법을 제정할 때 반드시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골목상권을 보호하려면 기존 유통업체의 발을 묶기보다 전통시장이나 자영업자들의 자생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인설/배정철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