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저걸 어떻게 다 먹지? 저러고도 어떻게 저렇게 날씬하지? 신은 역시 불공평하다.”

‘먹방(먹는 방송)의 황태자’라 불린다는 소문에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본명 정만수·26)의 유튜브 동영상(www.youtube.com/user/eodyd188)을 처음 봤을 때 기자가 내뱉은 어이없는 감탄이었다. ‘떡볶이 10인분 먹기’ ‘종류별 컵라면 다 시식하기’ ‘케이크 세 판 한 번에 먹기’ 등 혼자선 도저히 다 못 먹을 것 같은 대량의 음식을 얼굴 작고 마른 남성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싹싹 비워내고 있었다. 그는 먹는 중간중간 채팅창을 보며 구독자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음식 맛 평가까지 했다.

지난 2월23일 서울 상암동 CJ E&M의 다이아TV 스튜디오에서 밴쯔를 만났다. 다이아TV는 CJ E&M에서 멀티채널네트워크(MCN) 형식으로 운영하는 케이블방송 채널이다. 다이아TV와 파트너십 관계인 밴쯔는 이 채널의 간판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다. 이날 그가 먹을 메뉴는 수제 버거와 감자튀김이었다.

밴쯔는 동영상 속 모습보다 훨씬 날씬하고, 피부가 뽀얗고, 얼굴은 아주 작았다. 모니터 속 모습과 달리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정만수인데요, 촌스럽죠”라며 “오늘은 밴쯔가 아니라 정만수로 인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다이아TV에서 만나는 내 모습은 유튜브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나로선 이런 훌륭한 시설, 이렇게 좋은 스태프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이거든요. 확실히 집에서 혼자 찍을 때와는 차이가 아주 커요.”

‘편의점 음식 싹쓸이’로 시작한 먹방

밴쯔가 먹방을 시작한 것은 2013년 5월이다. 원래 크리에이터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는 “이게 직업이 될 줄은 그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대학 편입 면접 준비를 위해 말하기 연습을 하려 동영상을 올린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땐 그냥 면접 준비용 멘트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렸어요. 그런데 너무나 적은 조회 수를 보고 뭔지 모를 욕심이 생겼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콘텐츠’를 찾다가 ‘대형 사고’를 쳤다. 동네 편의점을 찾아가 그곳에서 파는 먹거리를 하나씩 전부 사 왔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 먹어 치웠다. 동영상의 인기가 치솟았고, 댓글도 넘쳐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먹는 걸 좋아했어요. 이렇게 마르긴 했지만 위가 좀 큰 편이라고나 할까요. 많이 먹는 건 자신있었거든요. 가장 자신있는 걸로 승부를 걸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그게 그렇게 인기를 끌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밴쯔란 예명은 자동차 브랜드 벤츠에서 따왔다. 그는 “나중에 벤츠 한 번 타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냥 지었다”며 “발음하기도 편하고, 왠지 웃기기도 하고, 이름은 잘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무장한 동그란 얼굴의 귀여운 무사’ 디자인 역시 스스로 먼저 스케치한 뒤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겨 만들었다.

그는 “음식 협찬은 절대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먹방 콘텐츠의 생명은 진정성에 있는데, 협찬을 받으면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먹방 크리에이터를 시작한 뒤 1년 정도는 방송용 음식을 사려고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뛰었어요. 택배도 하고, 공사장 인부도 해봤죠. 그래도 그 시간들을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내겐 참 많은 배움의 시간이었으니까요.”

‘밴쯔’와 ‘정만수’ 사이

[人사이드 人터뷰] "모니터 앞에서 먹고, 이야기하는 기쁨…이렇게 커질 줄 몰랐죠"
“크리에이터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냐”고 물었다. 밴쯔는 곰곰 생각하다가 “방송이 끝난 직후 잠시 동안”이라고 답했다. “방송할 땐 밴쯔로서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열심히 일하죠. 그때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껴요. 그런데 방송이 끝나면 모니터가 꺼지고, ‘정만수’로 돌아오죠. 밴쯔도, 정만수도 모두 다 현실이지만 서로 다른 세계의 자아잖아요. 그 두 자아를 늘 구별하려고 노력해요.”

그는 “방송이 끝나고 나면 잠깐 멍하니 있다가 설거지를 하고, 방송 도중 혹시 실수한 건 없는지 되짚어본다”고 했다. 또 “모든 구독자와 시청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을 인격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음식 먹는 태도와 말투에 상당히 신경쓴다”고 덧붙였다. “방송할 땐 ‘집에서 어른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식사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요. 그걸 꼭 유지해야 선을 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밴쯔는 “사람들이 먹방을 좋아하는 이유가 대리만족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하는 시간이 주로 밤인데,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이 슬슬 야식과 수다를 떠올린다”며 “먹방을 보면서 음식을 매개로 서로 소소하게 이야기하고,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냐고 묻기도 하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강 관리를 위해 방송 외 시간엔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 등 철저히 다이어트 식단을 지킨다. 또 평소 물을 많이 마신다. “운동은 헬스장에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는데요, 하루 2~3번 합니다. 한 번 운동할 때마다 2시간 넘게 운동해요. 안 그러면 체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건강도 나빠지고요.”

아울러 “난 그저 이름이 좀 알려진 일반인일 뿐”이라며 “알아봐주시는 분이 많을 때 정말 뿌듯하지만 온라인에선 밴쯔, 오프라인에선 정만수로 살아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흔히 ‘연예인병’이라고들 하잖아요. 이 직업도 잘못하면 그런 것 비슷하게 흘러버려서 자기 관리를 놓치기 쉬워요. 크리에이터는 늘 경쟁에 노출돼 있고, 외로운 일이거든요. 프로로 인정받으려면 당연히 그만큼 노력해야죠.”

“‘쌀밥’ 같은 크리에이터 되고 싶어”

밴쯔는 “‘쌀밥’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자극적인 콘텐츠 제공에 익숙해지면 계속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며 “그러면 크리에이터로서 생명력이 짧아진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구독자와 시청자를 위해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철칙을 고수하는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악플러에 대한 심정도 털어놨다. 밴쯔는 “나는 욕해도 좋지만, 내 지인들까지 상처주진 않기 바란다”며 “단지 나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가족이나 친구란 이유만으로 싸잡아 욕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크리에이터의 장래를 밝게 내다봤다. “이젠 MCN과 관련해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더욱 많아지고 있어요. 지금 국내는 초기 단계지만, 이제 곧 거대 산업으로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터로서 구독자와 시청자를 위해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기만 하면 됩니다. 앞으로 관련 플랫폼이 더욱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1인 방송과'크리에이터'의 세계
음식 먹기, 화장품 발라보기, 수공예…수많은 분야로 개성 살려 '경쟁 치열'

크리에이터(creator)란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동영상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방송 창작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크리에이터는 단순히 동영상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영상을 매개로 자신만의 브랜드와 팬 커뮤니티도 함께 구축한다.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스타급 크리에이터는 최근 CJ E&M이 만든 다이아TV, 아프리카TV, 쉐어하우스 등 여러 멀티채널네트워크(MCN)와 파트너십을 맺고 활동 중이다.

크리에이터를 ‘BJ(브로드캐스팅자키)’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아프리카TV에서 사용하는 고유명사에 가깝다. 현업에서는 크리에이터란 용어가 폭넓게 쓰이고 있다.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화장품을 직접 바르며 발색과 효능을 확인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음식을 대량으로 먹거나 새로운 음식을 소개하는 ‘먹방(먹는 방송)’ 크리에이터, 수공예 크리에이터,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시연하는 크리에이터 등 매우 다양하다.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장기를 살려 영상을 올린다.

크리에이터가 제작한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구독 신청하면서 이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의 가치가 수직상승하고 있다. 크리에이터는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마추어였지만 이젠 프로로서 일반인과 연예인 사이의 경계인과 같은 존재가 됐다.

MCN은 크리에이터의 1인 방송을 수익화한 모델이다. MCN은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더욱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크리에이터 양성과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이아TV를 운영하는 CJ E&M 관계자는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채널은 방송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될 만한 욕설 또는 지나친 상업화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크리에이터는 MCN과 대등한 위치로 파트너십을 맺기 때문에 크리에이터의 창의성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