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소기업을 진정으로 돕는 길
중소기업 육성이 대통령선거 주자들의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기관으로 승격시켜 중소벤처기업부 또는 창업중소기업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100만명을 넘어선 청년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99·88’(전체 기업 수의 99%, 고용의 88%)로 통하는 중소기업 육성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KOTRA 등으로 퍼져 있는 중소기업 지원 체계를 중소기업부로 일원화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가 새로 부처를 만들어 권한을 주면 창업과 중소기업 지원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 같은 ‘꿈 같은 얘기’다.

그러나 꿈은 쉽게 깨진다. 정부가 권한을 틀어쥐고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산업화 시대 얘기다. 혁신기업은 시장에서 탄생한다. 박근혜 정부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전국에 18개나 세운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혁신기업이 나왔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을 기존 산업에 불어넣은 미국 중소기업들은 이미 업계 강자로 떠올랐다. 창업 8년차인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의 기업 가치는 118년 전통의 프랑스 르노그룹을 넘어섰다. 에어비앤비는 호텔 한 채 없이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업체로 거듭났다.

지원 체계 일원화 주장도 근거는 약하다. KOTRA는 중소기업 수출 지원, 외국인 투자 유치, 경제통상 협력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KOTRA 본사 직원 518명 가운데 중소기업 수출 지원 등을 전담하는 직원은 180여명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지원으로만 기능이 줄어들면 다른 업무 공백은 불가피하다.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중소기업 수출은 대기업 해외 진출과 맞물려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 수출만 지원하는 통합 조직을 만든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대의(大義)가 새로운 장관 자리 만들기로 변질돼선 안 된다. 혁신기업의 경쟁력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때다.

김순신 산업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