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착한 일 할 때도 성과를 따져라
공정무역 인증은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바나나 초콜릿 커피 설탕 차 등 개발도상국 생산 작물에 적용된다. 최저임금 지급, 안전요건 준수 등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킨 생산자에게만 공정무역 인증이 부여된다. 공정무역 인증 상표가 처음 등장한 1988년 이후 공정무역 상품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2014년에는 전 세계 매출이 69억달러에 육박했다.

일반 커피보다 더 비싸게 공정무역 커피를 사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객관적 증거에 따르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먼저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은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공정무역 커피 산지 대부분은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이 아니라 그보다 열 배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다. 또한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이유로 소비자가 추가로 낸 돈 중 실제로 농부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극히 일부다. 나머지는 중개인이 갖는다. 따라서 더 싼 상품을 사고 남는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선의의 독지가들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돈과 자원을 헛되이 낭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감정에 치우쳐 무분별하게 펼치는 선행은 무익하거나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비영리단체 ‘기빙왓위캔’과 ‘8만 시간’의 공동 설립자인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부교수는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선한 의도가 부작용 없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답을 찾는다.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1만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년 전에는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약 28만개의 건물이 붕괴되고 15만명이 사망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아이티의 1000배 규모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0배가 넘는다. 그러나 지진 직후 모금된 국제원조금은 약 50억달러로 비슷했다. 국제사회가 자연재해에 합리적으로 대응했다면 피해 규모가 더 크고 더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한 재해에 더 많은 구호금이 전달됐어야 했다.

전 세계에서는 매일 1만8000명의 아이들이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지진보다 훨씬 더 큰 재난이 매일 발생하는 셈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 쏟아진 기부금은 사망자 1인당 33만달러였지만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 한 명당 원조 및 기부금은 평균 1만5000달러에 불과하다. 빈곤구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재해구호에 기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급한 일이다.

저자는 “공정무역 인증과 마찬가지로 노동착취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근로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착취 공장이 좋은 일자리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농장 일꾼, 넝마주이 등 더 형편없는 일자리뿐이거나 실직자가 되는 것이다.

극빈국에서 직접 의료 활동을 펼치는 것과 선진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대부분의 수익을 기부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일까. 저자는 의사로 버는 수입을 기부하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길이라고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