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에 있는 모바일 액세서리 제조업체 슈피겐코리아는 대졸 신입사원 연봉이 약 3000~3400만원에 이른다. 실적이 좋을 땐 1인당 1000만원 안팎의 인센티브도 지급했다. 직원 본인과 가족 한 명에게 종합건강검진까지 지원한다.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해외 워크숍도 연다.

슈피겐코리아처럼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중소기업은 직원 처우도 좋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국내 중소기업 대다수가 이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판로 개척은 꿈도 못 꾼다.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정부 및 공공기관 조달로 살아가는 ‘생계형 하청’이 대다수다.

국내 중소기업 약 35%가 대기업과 하청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기업 매출의 83.7%가 대기업에서 나온다. 간접적 하청 관계까지 합하면 60% 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업 하청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다.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공공조달 시장도 중소기업이 매출을 ‘의존하는’ 주된 통로다. 200여개 제품이 지정된 중소기업 간 경쟁 품목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중소기업 우수 제품을 많이 사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중소기업을 우물안 개구리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늘 시달린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사주지 않으면 안 팔릴 제품이 많아서다. 이 같은 의존성은 직원 처우를 좋게 할 유인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납품할 곳이 정해진 상황에선 중소기업이 현 상황에 안주한다”며 “1차, 2차, 3차 하청으로 넘어갈수록 생산성과 임금이 크게 떨어지는 주된 이유도 의존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대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기 힘들다는 얘기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적인 구조도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이유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에 따른 피해가 하청업체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어서다. 중소기업 근로자 10명 중 7~8명은 하청업체 부담 가중과 임금 격차 심화 등을 이유로 대기업 노조 파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