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필리핀산' 당신의 착각입니다
바나나는 1980년대 초만 해도 부잣집 애들이나 먹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수입량이 늘고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수입 제한이 풀린 뒤 흔한 과일이 됐다. 지금은 전체 수입 과일의 30%가 바나나일 정도다. 이 바나나의 원산지는 얼마 전만 해도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산이 국내에 유통되는 바나나의 90%가 넘었다.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남미산 바나나 수입량이 5년 새 13배 증가했다.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량은 줄었다. 수입지도가 바뀐 가장 주요한 이유는 필리핀에 불어닥친 태풍과 중국 때문이다. 바나나에 맛들인 중국인들이 생산량이 줄어든 필리핀산 바나나를 싹쓸이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바나나=필리핀산' 당신의 착각입니다
필리핀산 왜 비싸졌나

'바나나=필리핀산' 당신의 착각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산 바나나는 30만t이 수입됐다. 2012년(36만t)보다 20% 줄었다. 이 기간 남미산 수입량은 4427t에서 5만8388t으로 늘었다. 수입 대상국도 페루 과테말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으로 확대됐다.

남미산 바나나 수입이 증가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2012년 필리핀 바나나 전체 생산량의 25%가 초강력 태풍 ‘보파’로 인해 날아갔다.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바나나 곰팡이병까지 돌았다. 바나나를 따기도 전에 시들게 하는 ‘파나마병’의 일종인 TR4가 유행한 것. 생산량은 지금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나나를 잘 먹지 않던 중국과 이란 사람들이 바나나맛을 알게 된 것. 중국은 가까운 필리핀 바나나를 걷어가기 시작했다. 2~3년 새 필리핀산 바나나 가격은 최고 30% 올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원래 낮은 등급의 바나나를 수입해 유탕 처리한 뒤 말려서 믹스너트 형태로 가공해 먹다가 최근 바나나를 과일 그대로 먹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콰도르·칠레 등으로 눈돌려

필리핀산이 비싸지자 국내 업체들은 새로운 산지 발굴에 나섰다. 신세계푸드는 2015년부터 새 수입 국가를 물색해 올초 에콰도르산 바나나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나밸리’라는 이름의 이 바나나는 스타벅스와 이마트, 편의점 등에서 판매 중이다. 필리핀 바나나가 1묶음(1.3㎏ 이상)에 4000~5000원대인 반면 에콰도르산 바나나는 3000원대다. 다른 대형마트들도 남미 국가로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남미산 바나나도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과육이 크고 더 탄탄하다. 당도가 높을 뿐 아니라 씹었을 때 찰지고 식감도 풍부하다. 필리핀산보다 1~2주 정도 더 키운 뒤 따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은 게 중요한 이유다.

고령화 1인가구 증가에 인기 지속

업계는 국내 바나나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나나 수요는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15년 집계에 따르면 인구의 25%가 65세 이상 노인인 일본은 연간 바나나 수입량이 100만t을 넘는다. 전 세계 4억명 이상의 인구가 바나나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인구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는 국가에서 바나나 소비가 특히 많다.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이행하는 한국의 바나나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국내 바나나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소비량은 다른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기 때문에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