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롯데그룹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한 김모씨. 그는 올해 설 연휴를 잊지 못한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 직원이 된 만큼 오랜만에 가슴 펴고 큰집을 찾았다. 친척들의 축하세례가 이어지리라 생각했지만 웬걸, “그 월급 갖고 살 수 있느냐” “껌 팔 일 있으면 나한테 오렴” 등의 위로밖에 없었다. 사촌동생들은 “일본 기업에 왜 들어갔어요”라고 의아해했다.
[김과장&이대리] 롯데는 월급이 껌 값 수준?…"업종 최고 대우 ^^"
짠돌이 일본 기업이라고?

롯데에 다니는 김과장 이대리들은 입사 때부터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한다. 1967년 한국롯데가 생긴 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외부 시선은 50년 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최대 난공불락은 ‘짠돌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롯데마트에 다니는 이 대리도 ‘월급이 짜다’는 인식 때문에 아픈 경험을 했다. 소개팅 과정에서 본인의 사진까지 보고 “OK” 했던 상대 남성이 롯데 직원이란 얘기를 듣고 소개팅을 거절한 것. 이 대리는 “얼굴이나 성격 때문에 연애에 실패한 적은 있지만 월급이 적을 것 같은 롯데에 다닌다는 이유로 바람맞은 적은 처음”이라고 억울해했다.

‘대우가 박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태생 때문이다. 롯데제과 같은 식품회사로 시작하다 보니 “껌 팔아 껌값 수준의 급여를 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정도는 아니어도 업종 내 최고 수준의 연봉이라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도 식품업계에선 일등 대우를 받고, 롯데백화점 급여는 동일 업종 중 가장 많다. 롯데면세점, 롯데케미칼은 삼성 현대차의 어지간한 계열사보다 많은 급여를 준다.

짠돌이 다음으로 롯데맨을 괴롭히는 말은 ‘일본 기업’이란 수식어. 롯데백화점의 김모 과장은 ‘일본어 못함’이라는 문구를 페이스북 자기소개 화면에 걸었다. 롯데에 다니면 으레 일본어를 하는 줄 알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보고 이것저것 묻는 ‘페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2015년 경영권 분쟁 직후 일본어 질문은 최고조에 달했다. 김 과장은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사업 중요성이 커져 일본어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롯데맨이 훨씬 많다”며 “롯데는 일본 회사가 아니라 한국 기업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본어를 쓰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책상 쓰는 ‘열린 문화’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들에게 롯데 이미지를 물었더니 부정적인 단어가 1~3위를 휩쓸었다. ‘정체된’(25.4%)과 ‘조직 중심적인’(24.4%), ‘고리타분한’(24.2%) 순이었다. 롯데 하면 ‘50대 이상의 남성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실상은 다르다. 롯데물산 입사 20년차인 최모 부장. 관리자 신분인 만큼 높은 칸막이를 앞에 두거나 일반 사원 두 배 크기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 부장은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매일 빈 책상에 가서 자리를 잡는 일명 ‘메뚜기족’ 신세다. 이달 초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로 사무실을 옮긴 뒤 생긴 변화다.

최 부장은 아침마다 신입사원과 똑같은 크기의 개인 사물함에서 노트북과 필기구를 꺼내며 ‘오늘은 누구 옆에 앉을까’를 고민한다.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동료나 오늘 가장 얘기하고 싶은 사람 옆에 앉을 수 있어 오히려 더 좋다”는 게 최 부장의 말이다. 열린 사무실 형태의 ‘스마트 오피스’는 다음달 이후 롯데월드타워에 입주하는 롯데케미칼과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혁신실에도 차례대로 적용된다. 단계적으로 계열사 전체로 확대된다. 열린 사무실을 통해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조성해보자는 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뜻이다.

이런 변화 때문인지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마다 신 회장의 성대모사는 장기자랑 단골 메뉴다. 과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성대모사는 꿈도 못 꿨다. 이른바 ‘최고 존엄을 음해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롯데 임직원 카드는 보물

유통업이 주력사업이다 보니 ‘갑질’ 역시 롯데를 따라다니는 멍에 중 하나다. 협력업체에 납품가를 후려치고 뒷돈을 받는다거나 명절이면 선물을 갖다 바치는 납품업자가 줄을 선다는 말 등이 여전히 나돈다.

롯데맨들은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과거 일부 임직원이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한 번 걸리면 끝인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있다고 항변한다. 또 해외 명품업체를 중심으로 입주사의 힘이 세져 되레 눈치를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특권보다 애환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롯데백화점 박모 대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연달아 쉬어보는 게 꿈이다. 쇼핑업 특성상 주말이 대목이다 보니 남들 다 쉬는 빨간 날에 놀지 못한다. 박 대리는 “명절 같은 극성수기엔 영업매장에 파견돼 직접 배송 업무를 하는데 고객에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게 있다. 국내 최대 유통그룹인 만큼 직원은 최고 수준의 쇼핑 할인 혜택을 받는다. 롯데 임직원 전용 신용카드인 롯데 W카드만 있으면 롯데백화점과 마트, 홈쇼핑 등 롯데 모든 쇼핑 채널에서 10% 안팎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W카드를 받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다는 여직원도 있을 정도다.

진정한 롯데맨은 유통 아닌 제조

롯데그룹은 유통과 호텔 같은 서비스업 외에 제조업도 한다. 그룹 본산인 제과 등 식품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화학과 건설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조547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1976년 창립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LG화학을 제치고 국내 유화업계 영업이익 1위에 올랐다.

제조부문에서 일하는 롯데 임직원은 “진정한 롯데맨은 우리”라고 외친다. 유통과 호텔에 몸담고 있는 롯데 임직원보다 ‘충성심’이 더 세다고 주장한다. 김모 롯데칠성 팀장은 “롯데 사람끼리 모여 술이나 커피를 마실 때면 제조 계열사 직원은 꼭 롯데 제품을 찾지만 유통 계열사 직원은 그냥 다른 회사 제품을 주문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물건을 만들지 않고 그냥 좋은 제품을 가져와 팔면 되는 유통업의 특성상 그렇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그래도 유통, 제조업 할 것 없이 롯데맨의 희망사항은 한결같다. ‘롯데스럽다’고 하면 갑질하는 짠돌이 일본 기업이 연상되는 게 아니라 잘나가는 글로벌 한국 기업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외부에서 롯데의 팬을 확보해야 한다면 내부에선 직원만족도를 높이는 게 과제다. 다행히 직원 사이에선 불평보다 우리끼리 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연이은 검찰 수사에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등 여기저기서 얻어맞으니 ‘너무 안됐다’는 동정론과 ‘동네북을 면하자’는 각성론이 우세하다는 설명이다.

박모 롯데 과장은 “처음엔 그룹 차원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엄살을 떨며 ‘피해자 코스프레’한다고 여겼지만 오랜 기간 국내외에서 너무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져 내부 분위기는 좋다”고 전했다.

정인설/강영연/배정철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