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경제학의 기본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구매 의사와 능력을 가진 소비자들, 생산 의사와 능력을 가진 공급자들이 상호 작용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가격의 변화에 따라 수요량과 공급량이 변화한다. 소비자의 소득 수준 변화 또는 기업 간 경쟁 심화 등의 외부 요인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균형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동태적 조정과정을 통해 시장경제 메커니즘은 소비자의 기대효용과 생산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준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도출하고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신현상 한양대 경영대 교수
신현상 한양대 경영대 교수
개별 기업으로서는 소비자들이 어떤 종류의 제품에 대해 ‘디맨드(demand)’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욕구, 즉 ‘니즈(needs)’를 이해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 즉 제품을 비교한 뒤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매출 및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니즈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첫째, 기본적인 삶에 대한 니즈다. 음식, 물, 집 등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건들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다. 둘째, 개인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니즈다. 예컨대 홀푸드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식품은 가족의 건강에 민감한 주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셋째,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니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기 원하고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인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라는 슬로건을 통해 자사의 다이아몬드 제품을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성공적으로 포지셔닝해 미국의 남편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넷째,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니즈다. 이는 양복이나 신발, 안경 등의 구매의사 결정에 영향을 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프리우스 같은 친환경 자동차를 타는 것이 그 사람의 높은 지적 수준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이는 ‘과시적 소비’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아크로빌과 같은 최고급 주택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섯째, 즐거움에 대한 니즈다. 이로 인해 스포츠, 영화, 게임 등의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발전한다. 게임회사 닌텐도, 장난감 전문점인 토이저러스 등은 아이들의 즐거움에 대한 니즈를 공략하는 회사다. 여섯째, 소유에 대한 니즈다. 골동품과 우표를 수집하거나 의류, 장난감,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특정 제품군을 수집하는 경우다. 이는 종종 충동구매로 이어진다.

일곱째, 선물에 대한 니즈다.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을 때 꽃이나 케이크 등의 선물을 준비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구매하기도 한다. 오피스 타운에 즐비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성공을 설명할 때 삶과 재정이 팍팍한 직장인들이 5000원 정도의 지출로 향긋한 커피 내음을 맡으며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를 잠시 누리려는 구매 동기와 연결하기도 한다. 여덟째, 정보에 대한 니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오프라인 매체,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의 온라인 매체는 소비자의 정보에 대한 니즈를 만족시키는 수단이다. 문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경향이 특히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음은 마케터 입장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홉째, 변화에 대한 니즈다. 식당을 예로 들면 늘 가던 식당에 또 가는 것보다 새로운 식당을 찾으려는 욕구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는 ‘31가지의 맛’으로 유명한데, 이는 한 달 내내 매일 와도 계속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암시를 통해 소비자의 다양함에 대한 욕구를 공략한 경우다. 자라, 포에버21 등이 주도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업들이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신제품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중요하다.

열째, 시간에 대한 니즈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점점 희소한 자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거나 주어진 시간을 좀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솔루션에 관심이 주어진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음식 준비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외식산업이 발전한 것이 한 예다. 가족과의 캠핑 열풍에 따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판매량 증가, 폼나는 등산을 위한 아웃도어 의류산업의 급성장 역시 가치 있는 시간의 향유에 대한 니즈와 연관된다.

니즈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소유욕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필리핀의 이멜다는 3000개나 되는 신발 컬렉션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사회적 이미지에 너무 신경을 써 과시성 소비가 많아지면 고급 주택이나 핸드백 등의 가격에 거품이 끼게 돼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즐거움에 대한 니즈가 지나치면 마약·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도박 등 반사회적인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오히려 디마케팅(demarketing), 즉 수요를 줄여 공익을 제고하기 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디맨드의 변화와 트렌드를 잘 예측하고 관리하려면 소비자의 니즈를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솔루션이 아이디어나 프로토타입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재무성과로 이어지려면 니즈를 디맨드로 전환해야 한다.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한 뒤 솔루션을 찾아 디맨드로 전환하고,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리하는 것이 바로 마케터의 역할이다.

■ '수요창조자' 되려면…실패도 인정하는 평가시스템 갖춰야

경영컨설턴트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는 저서 《세상의 수요를 미리 알아챈 사람들: 디맨드》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소비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이에 걸맞은 신제품을 제시하는 사람을 ‘수요창조자’라 했다. 애플의 아이폰, 구글의 서치엔진, 도요타의 프리우스 등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수요를 창조한 사례로 제시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도 수요창조자가 될 수 있을까. 슬라이워츠키는 영화 ‘토이스토리’로 유명한 픽사를 예로 들면서 직원들의 협업을 통해 집단지성을 활용하고 조직 창의성을 높이는 것이 혁신의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픽사는 직원이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그건 곤란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좋아요. 그렇다면…”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내부 규칙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누군가 “풍선에 대한 영화를 만듭시다”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이 “좋아요. 그렇다면 풍선을 동물 모양으로 만들면 어때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이 경우 무시나 거절, 비판당할 두려움 없이 누구나 엉뚱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고,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덧붙이고 수정해 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때 실수를 하는 것도 수요창조 과정의 일부라는 컨센서스 조성,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인사관리 및 평가 시스템 구축 등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우리 기업들에 적절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신현상 < 한양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