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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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다섯 살 상훈이는 로봇 키트를 선물받았다. 그 나이 때 다들 한 번쯤 받는 선물이지만, 상훈이는 이 로봇에 완전히 매료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엄마에게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졸랐다. 상훈이 엄마는 전국을 수소문해 경기 부천시의 ‘하늘아이’라는 로봇 회사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회사 사장에게 “아이가 로봇을 배우고 싶다는데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사장의 허락을 받은 상훈이는 그 뒤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엄마 손을 잡고 서울 강남구에서 부천시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로봇을 배웠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봇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 하나인 럭스로보 최고경영자(CEO)이자 ‘로봇 천재’로 불리는 오상훈 씨(27)는 그렇게 로봇 세계에 뛰어들었다.

로봇에 미친 청년

오 대표는 “처음 로봇을 배울 때 생각한 것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완성품은 멋있지만 복잡한 회로를 이해하거나 플라스틱을 가공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하면 할수록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로봇에 미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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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로봇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로봇을 제작했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은 실력에 로봇에 대한 애정이 더해지자 또래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각종 장애물을 넘어 사람을 구해오는 로봇을 제작할 정도였다. “로봇대회에서 탄 상만 150개가 넘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봇대회인 월드로보페스트에서 2등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한국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여기저기서 “우리 학교에 오라”는 제안이 왔다. 그중 광운대 로봇학부의 제안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전액 장학금에다 학부생으로 구성된 연구소에 매년 1억원의 연구비를 주겠다고 했다. 좋아하는 로봇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광운대로 진학했다. 그렇게 공부하다 높은 연봉을 받고 대기업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누구나 쉽게 로봇을 제작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대학생활은 오 대표가 생각한 것처럼 즐겁지 않았다. 연구소 주임 교수는 밤낮도 주말도 없이 학부생들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로봇을 좋아했는데도 3년쯤 지나니 완전히 방전돼 버렸어요. 유학을 가거나 해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데 “아, 이렇게 고생했는데 결국 취직해서 하나의 부품으로 사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문득 초등학교 때 로봇을 가르쳐 준 사장님 생각이 났다. 그 사장님은 수업료를 받지 않는 대신 “너도 커서 아이들한테 로봇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 그때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쉽게 로봇을 제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연구소를 뛰쳐나왔죠.”

먼저 동업자를 찾기 시작했다. 광운대 로봇학부 연구소에는 오 대표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천재가 한 명 더 있었다. 1년 선배인 손승배 씨다. 그는 이미 1학년 때 “배울 게 없다”며 연구소를 나온 상태였다. 뭘 하고 사나 봤더니 유수의 국방연구소에서 로봇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반 년 넘게 술 사고 밥 사며 쫓아다닌 끝에 겨우 설득해 2013년 럭스로보를 창업했다. 손씨는 럭스로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여섯 번 실패 끝에 올해 첫 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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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업자금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스타트업 지원자금으로 받은 5000만원이었다. 연구비로 쓸 돈도 모자라서 직원들에겐 월급을 10만원씩만 줬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일했지만 스타트업은 쉽지 않았다. 3년여간 여섯 개 아이템을 내놨지만 전부 생산도 못 하고 사라져버렸다. 오 대표도 직원들도 ‘공짜 노동’에 지쳐갔다. “다 같이 포기하려다가 정말 마지막으로 처음에 구상한 것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했어요. 그게 지금 만들고 있는 ‘모디’입니다.”

모디는 누구나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로봇 모듈이다. 통신만 되거나, 전등이 켜지거나, 모터가 달려 팬을 돌릴 수 있는 등의 기능을 갖춘 모듈 13종이 있다. 이걸 사용자가 자유롭게 조립해 나만의 로봇을 제작할 수 있다. 레고와도 조립이 되기 때문에 모양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처음에 구상한 아이템이지만 사업을 대하는 자세는 달랐다. 국내뿐 아니라 처음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고, 홍보 자료도 훨씬 정교하게 제작했다. “망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몇 번 실패해 보니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원래는 여가용 DIY(do it yourself) 조립 제품으로 팔려고 했다. 그런데 KOTRA 수출창업지원팀에서 제품을 보더니 “교육용으로 쓰면 좋겠다”며 영국 학교에 판매를 타진해줬다. 영국 학교에서는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접목한 교육용 아이템으로 유용하겠다”며 구매를 결정했다. 그렇게 창업 4년 만에 올해 첫 매출을 기록했다. 영국이 채택하자 영국령이어서 교육 커리큘럼이 비슷한 나라에서도 잇달아 연락이 왔다. 오 대표는 “올해 30개국에 수출할 예정이고 매출도 50억원 정도 발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1000억원 인수 제안 거절…“망하면 또 하면 되죠”

연매출 50억원은 스타트업치고는 상당한 성과다. 하지만 럭스로보의 진가는 이들이 제작하는 로봇이 아니다. 핵심 기술은 로봇 안에 있는 반도체다. 오 대표와 손 CTO는 모듈 하나하나를 사용자가 쉽게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자체 기술로 반도체 운영체제(OS)를 개발했다. 반도체끼리 서로 통신하는 방식을 사용해 값싼 반도체로도 값비싼 제품의 성능을 낼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 기술에 주목했다. 오 대표는 “이 기술을 응용하면 전자제품 생산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복잡한 스마트폰의 OS를 더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럭스로보 기술에 대해 설명을 들은 한 대기업 전자업체 고위 관계자는 “차세대 엔비디아(세계 1위 그래픽 반도체 업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호평했다. 이 기술을 노리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1억달러(약 1140억원)에 인수를 제의했다고 한다. 오 대표는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를 묻자 너무나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세금 떼면 60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몇백억원 벌려고 사업 시작한 거 아닙니다. 저희 기술의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면 회사 가치를 ‘조원’ 단위로 올릴 자신이 있어요.” 그러다 실패하면 어쩌냐고 다시 물었다. “사실 저희도 미친 생각 같긴 한데요. 그래도 실패하면 다시 하자며 팀원들끼리 웃고 넘어갔습니다. 저희는 정말 로봇을 좋아하거든요.”

빠르게 커지는 로봇시장
산업용 日 주도…IoT·AI와 결합 서비스용 급성장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 로봇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단순히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을 떠나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과 결합해 인간을 대체하는 노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로봇 시장의 성공을 이끈 것은 산업용 로봇이다. 이 시장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화낙, 야스카와, 가와사키 등 일본 기업이 산업용 로봇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 ABB 쿠카 등도 빅5에 들어간다.

IoT와 AI의 발달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은 아직 없지만 일부 특화된 전문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수술로봇을 만드는 인튜이티브서지컬(미국), 청소로봇을 제작하는 아이로봇(미국), 착유로봇 기업인 렐리(네덜란드) 등이 대표적이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의 수술로봇 다빈치는 세계적으로 3400대(2015년 6월 기준)가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도 42개 병원에 54대가 설치돼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68%에 달한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와 구글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수송로봇 등도 유명하다.

한국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업체가 없다. 벤처기업인 퓨쳐로봇이 안내용 로봇을 미국 새너제이공항 등에 납품하며 선전하고 있다. 최근 LG전자가 가정용 및 안내용 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연내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대학들도 잇달아 학부에 로봇 전공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한양대 광운대 등이 로봇학부를 운영 중이다. 학부 때는 기계공학 등을 전공한 뒤 대학원 때 로봇을 공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서울대는 금속이 아니라 실리콘 등을 활용한 소프트로봇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