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자가 줄어 혈액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대한적십자사의 관리 소홀 등으로 폐기되는 혈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만 8만명이 넘는 헌혈자의 혈액이 쓰이지도 못한 채 폐기처분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혈액관리사업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혈액 생산량 3%는 버려져

기껏 헌혈했더니…한해 8만명분 혈액 폐기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수혈 및 연구용 혈액제제는 611만4941유닛(팩)으로 전년의 640만2270유닛에 비해 4.4% 줄었다. 1유닛에는 320~400cc의 혈액이 들어간다. 지난해 폐기된 혈액은 18만3763유닛으로 2015년(16만8320유닛)보다 9.1% 늘었다. 버려진 혈액은 전체 혈액제제 생산량의 3%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헌혈 인구가 286만6300명인 것을 감안하면 8만5000명분의 혈액이 폐기된 셈이다.

기 의원은 “혈액제제 생산은 줄어드는데 폐기 혈액은 늘면서 혈액 부족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의 혈액 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혈액 부족 현상 갈수록 심각

의료계는 지난해 말부터 혈액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적십자사의 혈액 보유량은 현재 3.8일분에 불과하다. O형 혈액이 2.7일분으로 가장 적다. 안정 수준인 5일분을 유지하는 혈액은 B형뿐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적십자사는 지난 19일 의료기관의 혈액관리 담당자들을 불러 ‘의료기관의 효율적인 혈액 재고 관리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적십자사는 이 자리에서 각 병원이 효율적으로 혈액을 관리하는 방안을 설명하고 적정 재고량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혈액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 고갈을 우려한 의료기관이 평소보다 많은 양의 혈액을 신청하게 되고 이는 혈액 수급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에서는 형식적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병원 관계자는 “재고 관리를 강조하는 적십자사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혈액 사용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껴 써야 한다는 말 자체가 의미 없다”고 했다.

◆“책임 없다”는 적십자사

지난달 적십자사 기준 헌혈자 수는 20만3609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23만1909명)보다 2만8000명가량 줄었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따라 헌혈을 많이 하는 학생, 군인 등 젊은 층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게 이유다. 여기에 감염병 유행 등으로 헌혈이 불가능한 지역이 늘면서 헌혈 인구는 더욱 위축될 조짐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행정자치부와 협의해 민방위 훈련자를 대상으로 헌혈을 늘리는 등 중장년층 헌혈을 확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적십자사의 혈액사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도 헌혈 기피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폐기 혈액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는 단골 사항이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적십자사의 관리 부실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적십자 측은 “직원 잘못 등으로 폐기한 혈액량이 일부 늘었지만 혈액 검사를 강화하면서 수혈 등에 부적합한 혈액이 많아진 영향이 크다”며 “적십자사에서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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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보도문

본지는 지난 2월24일자 사회면에 ‘기껏 헌혈했더니…한 해 8만명분 혈액 폐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혈액 폐기량이 증가한 것은 혈액 선별검사 결과 이상에 따른 것이고 관리 소홀로 인한 증가는 아닌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