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1993년 중국 광둥성 선전에 설립된 킹디(金蝶) 인터내셔널 소프트웨어 그룹은 중국 최대 전사적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 공급 회사다. 킹디 소프트웨어, 선전 킹디 미들웨어, 킹디 메디컬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회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중소기업은 대부분 킹디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재고를 관리하고 회계업무를 본다. 한국에서 더존비즈온이 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중국 시장이 훨씬 크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회사를 차리고 키워낸 로버트 쉬(중국명 쉬샤오춘·徐少春)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인 기업가답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0일자로 게재한 그의 인터뷰에서 그의 영어는 동년배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유창하지 않았지만 스타일은 아주 달랐다고 소개했다.

구찌의 브로그(날개 무늬 구멍이 뚫린 가죽구두)를 신고, 꽃과 원숭이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전했다. 공산당 주요 인사 등 높은 관리들과 악수하는 사진을 잘 보이게 걸어두는 중국 회사들과 달리 그의 사무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조정을 즐기는 그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자랑스럽게 배치돼 있다. 쉬 회장의 운전기사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들 그를 그저 ‘로버트’라고 부른다.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 드러난다.

“내 삶은 ‘차이니즈 드림’”

클라우드의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노트북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로버트 쉬 회장
클라우드의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노트북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로버트 쉬 회장
화려한 스타일만 보면 부잣집 아들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쉬 회장의 성장과 창업 스토리는 전형적인 중국의 입지전 스토리다. 그는 마오쩌둥 출신지인 허난성의 한 가난한 농가 출신이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내 주변을 둘러싼 어려운 삶의 조건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에 ‘아메리칸 드림’이 있는 것처럼, 이것(내가 겪은 삶)은 ‘차이니즈 드림’”이라고 쉬 회장은 표현했다.

20대였던 1990년대 쉬 회장은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컴퓨터와 회계 관련 학위, 그리고 친척에게 빌린 5000위안(약 83만원)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그는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중국에선 민간 기업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2011년 홍콩 케이블TV 채널8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보급과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능성을 믿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프로그램에 기반한 회계 소프트웨어로 시작했다. 그 무렵 MS의 DOS 플랫폼은 중국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쉬 회장은 이 부문에서 성공을 거뒀다.

킹디가 이달 초 발표한 기업설명회(IR)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중국 중소기업 ERP 부문 1위 회사(IDC 선정)로 11년 연속 뽑혔다.200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 소프트웨어업계를 장악한 킹디는 중국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01년 무렵에는 1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2400만달러 규모 매출을 올렸다. 그해 홍콩증시의 성장기업 부문(GEM)에 상장했다. 2005년 일반증시 쪽으로 갈아탔다.

2007년 미국 IBM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킹디인터내셔널 지분 7.7%를 사들이기도 했다. IBM의 투자를 유치해 전략적 파트너로 삼은 것은 킹디가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지금은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

그러나 쉬 회장은 단순히 MS 기반 회계 소프트웨어 회사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는 “예전엔 중국 제조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자체 브랜드로 생산한다”며 “기업에 변화는 필수적이고 변화하려면 새로운 기법, 새로운 비전, 새로운 경영관리와 새로운 정보기술(IT)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체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소프트웨어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쉬 회장은 약 100만명에 달하는 킹디 소프트웨어 이용자의 경험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는 FT에 “IT업계에는 10년마다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며 “지금 우리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 회장은 클라우드 기반 기업용 응용프로그램 공급 회사로 성격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2012년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킹디가 클라우드 컴퓨팅을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자체 네트워크 컴퓨터 서버 운영사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쉬 회장은 그 대신 아마존 웹 서비스와 조인트 벤처를 시작했다. 킹디의 소프트웨어가 미국 기업의 클라우드에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 중소기업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기업의 원래 목적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이런 회사의 목표를 직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회사 안에 가짜 야자수와 해먹, 리클라이너를 설치했다. 천장엔 하늘의 영상을 재현하는 스크린을 넣었다. 이 괴짜스러운 행동의 목적은 ‘고객이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도 기업을 어디서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부여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FT는 그가 킹디를 운영하는 방식이 서구 기업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다른 중국 기업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컨대 아마존의 중국판인 알리바바나, 페이스북과 와츠앱의 중국판인 텐센트와 달리 킹디는 서구의 노하우를 수입하는 대신 혁신적인 기술을 직접 개발한다는 것이다.

“인재가 회사 최고 자산”

쉬 회장은 인재 관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회사 성공의 비결은 인재를 찾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적자원은 우리 회사 비용의 약 65%를 차지하며, 동시에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직원들에게 보상도 후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최고 성과를 낸 직원은 500만위안(약 8억3000만원)짜리 아파트를 포상으로 받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직원들은 ‘순금(純金)’이라고 부른다. ‘금으로 된 나비(金蝶·킹디)’라는 회사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똑똑한 직원은 유명 과학자인 장양제(張良杰)가 이끌고 있는 연구소에 곧바로 투입된다. 기업이 정해 놓은 한도를 초과해 전자 영수증이 발행되면 자동으로 경고를 띄우거나, 전기요금이 낮을 때는 야간근무 비중을 늘리는 등의 기업활동 지원 프로그램 등을 구상 중이다.

그는 ‘정도를 걸으며 왕도를 행하라(走正道 行王道)’는 철학을 바탕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빅데이터 서비스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