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 허울만 남은 날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시행해온 ‘문화가 있는 날’ 참여 열기가 급랭하고 있다. 시행 이후 이 사업엔 각 기업이 잇따라 동참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문화융성’ 국정 기조에 맞춰 너도나도 문화융성위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2014년 상반기 4개였던 참가 기업은 지난해 상반기 65개로 급증했다. 2015년 하반기에만 34개, 지난해 상반기엔 22개의 기업이 새로 참여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MOU를 맺은 기업은 전무하다. MOU 체결이 예정된 기업도 없다.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등 떠밀기’식 참여 요청이 곤란해진 결과다.

'문화가 있는 날' 허울만 남은 날
기업과 공연단체들의 참여가 급감하면서 ‘문화가 있는 날’이 허울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연업계 관계자들은 “기업과 공연단체가 비용을 대고 정부는 생색만 내왔다”며 “타산이 맞지 않는 데다 이젠 눈치를 볼 이유도 없어져 참여를 꺼리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효성도 없는데 참여 강요”

문화가 있는 날은 공연, 전시, 영화 등을 할인 또는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문화융성위가 문체부와 공동 주최하는 이 사업은 지난해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던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문화융성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알려지면서 문화융성위도 각종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위 관계자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로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당분간 MOU 체결 등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기업이나 공연단체들의 참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취지는 좋지만 기업으로선 별다른 실익이 없다”며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반강제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참여 기업이 전무한 데다 기존 참여 기업들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업계 대표주자인 CJ E&M은 지난해 12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였던 ‘집들이 콘서트: 집콘’을 폐지했다. 2014년 3월 시작했던 이 행사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팝페라 가수 임형주 등 유명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집들이하듯 초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네이버에서 실시간 중계하면서 인지도도 높았다. 그런데도 CJ E&M이 이를 돌연 폐지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CJ E&M은 “계약 만료로 집콘은 폐지했으나 일부 공연 할인은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연계되는 사업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분석하고 있다.

◆이달 스케이트장 개방 등 그쳐

공연단체들은 기업보다 더 참여를 꺼리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관객은 줄어들고 있는데 할인만 요구하고 비용 보전 등은 전혀 없어서다. 한 민간 공연단체 관계자는 “관객층이 확대되는 효과는 미미한데 운영 손실은 커 이젠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가 있는 날에만 공연 관객이 몰리고 그 주의 다른 요일엔 관객이 평소보다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하고 나면 그 주의 수입이 30%가량 줄어든다”며 “정부는 요금 인하만 원할 뿐 지원은 조금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기업과 공연단체의 참여가 저조해지면서 부실 논란도 커지고 있다. 2월 문화가 있는 날인 22일에도 별다른 신규 프로그램이 없었다. 지난달에 이은 스케이트장 무료 개방, 송인서적 부도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을 위한 도서 교환 이벤트를 하는 데 그쳤다. 네티즌들은 “왜 문화와 상관없는 스케이트장 개방을 하는 것이냐” “이미 무료이거나 1만원대 수준의 저가 공연 등만 할인해주고 생색을 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 예산은 올해에도 늘어났다. 국정 농단 사태로 문체부 예산이 크게 줄었지만 문화가 있는 날 예산은 지난해 147억5000만원에서 올해 162억원으로 9.8% 증가했다.

김희경/선한결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