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푸조 회장에 전화해 일자리 지켜낸 메르켈
미국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모터스(GM)의 유럽 법인인 독일 오펠을 인수하기로 한 프랑스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에게 오펠 공장 이전과 감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일자리를 지키겠다”며 메르켈 총리가 발벗고 나선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슈뢰더 전 총리처럼 팔 걷어붙여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21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가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 회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오펠의 독일 내 일자리와 공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푸조 회장에 전화해 일자리 지켜낸 메르켈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PSA가 오펠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생산시설과 투자, 고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타바레스 회장은 “메르켈 총리가 PSA의 오펠 인수에 대해 열린 자세로 경청했다”며 “고용 유지 확약에 양자 모두 만족했다”고 전했다.

PSA의 오펠 인수를 앞두고 독일에서는 일자리 불안이 커져왔다. 지난 14일 오펠 인수 발표 이후 독일 정·재계는 벌집을 쑤신 듯 부산했다.

오펠의 연간 자동차 생산대수는 116만대 수준에 불과하지만 독일 내에서만 1만9000여명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펠은 본사가 있는 뤼셀스하임을 비롯해 카이저슬라우테른, 아이제나흐에 자동차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보쿰에는 부품집결시설을 구축해 운용 중이다. 1만4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헤센주 뤼셀스하임은 오펠에 대한 지역경제 의존도가 절대적인 수준이다.

급기야 메르켈 총리가 나섰다. 그는 17일 “독일 내 일자리와 공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마티아스 마흐니흐 경제담당보좌관과 브리기테 치프리스 경제에너지부 장관에게 PSA의 오펠 인수와 관련한 독일 정부 인가 및 고용보장, 노조 가입 문제 등의 조치를 전담토록 하는 등 발빠른 대처에 나섰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과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동독지역 투자 실패로 파산 위기에 몰린 건설회사 홀츠만을 살리려고 발벗고 나선 것처럼 이번엔 메르켈 총리가 오펠의 구원자 역할을 자임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GM이 독일 정부의 사전허락 없이 오펠 매각에 나선 점을 빌미로 잡아 유리한 결과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보조 맞춘 독일 산별노조

독일 산별노조인 IG메탈도 일자리 지키기에 정부와 보조를 함께했다. IG메탈은 오펠이 GM과 기존에 맺은 ‘2018년까지 고용 보장, 2020년까지 독일 3개 공장에 대한 투자 약속’을 PSA가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외르크 쾰링거 IG메탈 중부지역 담당 대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용과 투자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일각에선 PSA의 고용 보장 약속이 시한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오펠을 둘러싼 포커게임은 이제 막 본대결에 진입했을 뿐”이라며 “2019년 이후 감원 및 공장 이전 우려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오는 9월 총선을 코앞에 둔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정치권이 경제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성급하게 시장에 개입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