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주강국을 향한 디딤돌 '200대 기술 로드맵'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미국 의회에서 ‘홈스테드법(자영농지법)’이 통과됐다. 미개척 지역의 일정한 토지에 5년간 살면서 경작한 자에게 160에이커(약 0.7㎢)의 토지를 무상 지급하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서부 지역을 신속하게 개척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당시 속절없이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의 비극이 숨어있기는 하지만 이 법에 따라 1934년까지 200여만명이 땅을 불하받았고, 그 규모가 우리나라 면적의 33배인 2억7000만에이커에 이르렀다고 한다.

‘To arrive, survive and thrive.(잘 안착해 살아남고 번창하라)’ 이는 2010년 유럽의 화성재단이 화성에 정착할 남녀 2명씩 총 4명의 이주민을 모집하고자 했던 화성이주 프로젝트의 슬로건이다. 조건은 편도 티켓만 제공하고 초기 생필품은 지구에서 보내주는 것이다. 얼마 전 화성탐사 중 고립된 한 우주인이 감자를 재배하며 생존하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었던 만큼 공상만화에나 나올 만한 것이 점점 현실성 있는 얘기로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두 이야기에서 묻어나올 수 있는 비극성이나 윤리성 문제는 차치하고 새로운 프런티어를 향한 도전정신, 남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개척의지가 절절하게 읽힌다. 이런 측면에서 미지의 우주를 향한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이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이제 우주는 더 이상 극소수 우주강국들만의 경쟁무대가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이뤄져온 우주개발에 개발도상국까지 가세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2013년에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2014~2040)’을 수립하고 우주개발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가계획을 기술적으로 구체화하는 기술개발 전략, 곧 기술로드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14개 기술영역의 1233개 우주기술에 대해 2035년까지의 기술목표 성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고, 유럽우주국(ESA)도 50여개 기술 분야에 대해 10년간의 기술로드맵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지만 기술로드맵은 갖추지 못한 상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점기술 도출과 이에 대한 개발전략이 시급하다고 보고 지난 1년간 산·학·연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미션 달성에 필요한 수요기술 754개를 도출하고, 200대 중점기술을 뽑아 22일 열린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에서 이를 확정했다. 이번에 마련된 기술로드맵은 우리의 우주기술 현주소, 핵심 기술분야, 이를 확보하기 위한 단계별 개발전략 및 일정 등을 담고 있다.

지금은 당면과제인 경제활력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미개척지를 찾아 나서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한다. 이제 우주를 빼놓고는 미래 인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광활한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고 상상해야 한다.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기술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200대 중점 우주기술개발 로드맵’을 착실히 실행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세계 우주강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홍남기 <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