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폭풍' 몰고올 美 Fed의 자산축소

장 보 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장 보 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 미국 경제의 회복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간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에 밀려 다소 빛을 잃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이 같은 훈풍 소식은 세계 경제나 한국 경제에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미국 경제의 온기는 그 이면에 또 다른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5년 말 7년 만에 처음으로 제로금리 탈피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말에도 다시 금리를 인상하면서 Fed는 이제 금리 정상화라는 새로운 궤도에 올라섰다.

Fed는 올해도 세 번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2015년만 해도 0% 수준에 불과하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 연말 1%대 중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만으로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 또 다른 숙제도 대기하고 있다. 그동안 양적완화로 늘어난 Fed의 막대한 보유자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Fed의 보유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만 해도 9000억달러였지만 지금은 무려 4조5000억달러(미국 국내총생산의 25%)에 이른다. 단계적으로 양적완화를 축소(테이퍼링)해온 결과 2014년 10월 이후로는 더 이상 늘어나고 있지 않지만 만기 도래 자산을 계속해서 재투자함으로써 Fed의 보유자산은 전혀 줄지 않았다.

Fed는 ‘미지의 세계’로 불리는 이 같은 비정상적인 통화정책 운영에 따른 도전이나 위험을 의식해 이른바 ‘출구전략’이라는 통화정책 정상화의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여기서 출구전략의 순서를 ①금리 인상 ②보유자산 축소로 잡고 있다. 이제 금리 인상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다음 단계로 보유자산 축소가 쟁점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보유자산 축소에서도 직접적인 자산 매각보다 만기 도래하는 자산의 재투자를 중단하거나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식을 우선시하고 있다. 결국 이 재투자의 처리 향방이 현안인 셈이다.
[뉴스의 맥] 보유자산 축소 검토하는 Fed, 또다른 '긴축발작' 대비해야
'보유자산 정상화'하자는 매파

문제는 그 시점이다. Fed는 이미 2015년 말 금리 인상에 들어간 이후 만기 자산의 재투자를 금리 정상화가 잘 안착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금리 정상화가 잘 안착되는 것은 언제인가. 명확한 답은 없지만 Fed 내에서는 1% 또는 2%의 기준금리가 기준치로 언급돼왔다. 만약 1%라면 금리를 한 번만 더 올려도 재투자 중단 또는 단계적 축소 문제가 당장 가시권에 들어온다. 실제로 Fed 내 비교적 ‘매파’ 쪽 인사들은 이제 보유자산의 정상화 문제를 의제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산 축소를 강조하는 시각은 무엇보다 Fed의 막대한 보유자산에 따른 위험에 주목한다. 우선 금융시장의 왜곡이다. Fed가 직접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을 독점함으로써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Fed는 이를 통해 시장 금리가 하락하고 또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실물경제가 진작되기를 기대하지만 오히려 인위적 저금리에 따른 버블이나 시장 왜곡이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늘어난 자산으로 인해 Fed가 시장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엔 그 손실이 납세자 몫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금리인상 주력" 주장도

그러나 아직 자산 축소가 시기상조라는 게 Fed의 중론이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최근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한 반기별 통화정책 증언에서 “경제가 견조한 과정에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산 축소의 시작을 연기하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경기회복세의 지속 향방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상황에서 자칫 금리 인상에 이어 성급한 자산 축소에 따른 충격을 경계한 대목이다. 하지만 옐런 역시 조만간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역시 그 시점은 머지않아 보인다.

반면 일각에서는 아예 자산 축소 필요성을 의문시하기도 한다. 가령 양적완화를 주도한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서둘러 자산 축소에 나설 이유가 있는지 반문한다. 현금 등 안전한 유동 자산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크다는 점, 또 그간 새로운 수단까지 동원한 통화정책 수행방식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중기적으로 Fed의 적정한 자산보유 규모가 여전히 큰 탓이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4조달러 이상의 자산 보유가 필요한데 지금의 4조5000억달러를 소폭 밑돌 뿐이다. 그리고 자산매수 축소, 특히 재투자 중단조차도 자칫 예상치 못한 충격을 초래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금리 측면의 대응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금리 인상에 주력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Fed의 기준금리가 0.5~0.75%에 그치는 상황에서 당장 이런 자산 축소 또는 재투자 중단이 시급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오는 3월이라도 추가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이 문제는 직접적인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극적인 자산 축소론 △신중한 자산 축소론 △자산 축소의 유예 지속론 등 세 가지 입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옐런은 재투자 중단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기 시장금리가 0.15%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있고, 이는 두 번에 걸친 금리 인상에 맞먹는다고 진단했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체로 올해 Fed의 금리 인상이 두 번에 그치고, 재투자 중단은 내년 중반에나 가능하다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 향방의 불확실성, 또 트럼프발(發) 정책 충격 소지 등을 감안할 때 이처럼 신중한 태도의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Fed 내부의 인식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Fed 행보에 대한 대내외 금융시장의 민감성이 커진 상황에서 자산 축소 논란이 가세하며 새로운 금융 폭풍을 촉발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금리추이·자본흐름 주시해야

국내에서도 대우조선 회사채 만기 도래나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매개로 ‘4월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아마도 3월 이후 Fed의 행보, 특히 만기 자산의 재투자 중단을 둘러싼 혼란 역시 미국 금리나 해외 금융시장 향방의 불확실성 심화는 물론 대미(對美)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국인 자본의 유출 위험 등을 초래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을 더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 4월 위기설의 전선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장보형 < 하나금융경영연구소 / 수석이코노미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