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M&A 시계' 3개월째 멈췄다
빠르게 움직이던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계가 멈췄다. 지난해 11월 말 이후 신규 M&A 발표가 뚝 끊겼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삼성그룹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던 시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 이후 삼성전자는 M&A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왔다. ‘M&A 공백’이 우려되는 이유다.

◆11월 말부터 자취 감춘 M&A

지난해 삼성전자는 M&A에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사들인 기업이 7개에 달한다. TV 제조에 필요한 소재 관련 특허를 보유한 QD비전부터 인공지능(AI) 플랫폼인 비브랩스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쓸어담았다. 연간 M&A 규모도 사상 최대다. 전장(電裝)업체 하만 인수에 단일 기업으로는 가장 비싼 80억달러(약 9조2000억원)의 몸값을 치른 결과다.

하지만 공격적인 M&A 행보는 작년 11월23일 QD비전 인수를 마지막으로 멈췄다. 이달 초 사물인터넷(Io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퍼치를 흡수했지만 이는 삼성전자가 자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키운 업체로 M&A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비슷한 시점에 검찰 및 특별검사팀의 삼성전자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1월13일 이 부회장이 처음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고 11월8일과 23일엔 삼성 미래전략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12월21일부터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아무리 긴급한 M&A라도 의사결정에 1개월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최순실 사태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삼성전자는 M&A 관련 신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것으로 투자은행(IB)업계는 보고 있다.

◆담당 부서 “종료된 계약 뒤처리만”

삼성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검찰 수사 개시 이후 미래전략실에서 법무 및 언론 담당 기능만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M&A 관련 부서는 이미 종료된 계약과 관련한 뒤처리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경영진에 대한 특검 조사로 제대로 숨도 못 쉬는 분위기에서 일은 없고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수개월이면 인수한 업체의 기술을 자사 제품에 내재화하는 빠른 순발력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공백은 더 뼈아프다. 지난해 10월 인수한 비브랩스의 AI 플랫폼은 4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S8에 적용된다. 지난달 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서는 작년 8월 인수한 데이코의 프리미엄 가전에 삼성전자의 기술을 가미한 냉장고와 쿡톱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만 고위 임원들은 지난주에도 기흥 공장 등을 방문하며 전장 분야에서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등과 만나 차량 반도체 개발과 관련한 생각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4차 산업혁명과 직접 연결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며 “이런 변화 속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작업이 지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