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에 쓴 독은 뭘까…리신·복어독 호흡기로 흡수 가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의 암살에 사용된 독극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암살에 사용된 독은 부교감신경흥분제 브롬화네오스티그민과 신경가스인 VX가스, 피마자씨에서 추출한 독극물인 리신,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 시안화칼륨(청산가리)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혀 새로운 물질이 사용됐다는 추정도 나온다. 세계독성유전체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류재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치명적인 독극물이란 점은 모두 같지만 각각의 독극물 종류에 따라 피부와 호흡기, 구강, 피하 조직으로 흡수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리신과 테트로도톡신은 독극물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축에 속한다. 리신은 피마자씨나 콩 등에서 추출한 식물 독으로 세포에서 단백질을 형성하는 리보솜을 변형시키거나 절단시켜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 합성을 막아 세포를 죽게 한다.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6000배 이상 강하다. 테트로도톡신은 복어 알과 내장에 들어 있는 신경독 성분으로 청산가리 독성의 1000배에 이른다. 이 독은 신경세포의 신경전달에 관여하는 나트륨 채널을 방해해 마비 증상을 일으킨다. 두 독극물은 피부에 닿거나 분무 형태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 내에 흡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암살용 독극물로 주목받아 왔다.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은 독침이나 독총에 주로 사용된다. 청산가리의 5배가 넘는 독성을 띠지만 침 등을 통해 피부 아래 조직에 투여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파라티온은 1960년대 농약으로 사용됐지만 병마개를 여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정도로 맹독물질로 손꼽힌다. VX가스나 사린가스, 청산가리가 사용됐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류 책임연구원은 “공항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뿌릴 경우 같은 장소에 있는 범인들도 위험할 수 있고 청산가리는 피부 조직을 통해 흡수되지 않고 삼켜야만 효과적”이라면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도 종종 암살용 독극물로 쓰인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야당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은 다이옥신에 중독돼 얼굴이 심하게 달라졌다. 2009년에는 영국에 망명한 전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폴로늄210에 중독돼 입원한 지 6일 만에 숨졌다.

자연에서 발견된 가장 치명적인 독은 밀폐된 깡통에서 자라나는 보툴리누스균이다. 찻숟갈 하나 정도(약 5g)면 약 4000만명의 목숨을 앗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국가가 독극물에 대한 충분한 분석 기술을 갖고 있어 아무리 새로운 물질도 2~3일이면 충분히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김정남이 숨진 직후 사인을 알아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