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개정안, 투기자본만 배불릴 뿐이다
지난해 7월 여야 의원 122명이 공동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곧 처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핵심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별도선임, 집중투표 의무화, 전자투표 의무화, 우리사주조합원의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참여권 보장, 자사주 처분규제 등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 알짜 중소기업들까지 모두 외국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의 소수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직접 책임을 묻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외국투기자본이 국내 지주회사의 지분 1%(상장사 0.01%)만 소유하면 자회사 등의 경영진을 상대로 책임추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국내 지주회사는 총 162개이며 1개 지주회사 평균 10.4개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 증손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최소 1700개 정도의 국내 기업들이 외국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집중투표의무화 안은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대립적 이사회 구도의 형성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번 개정안은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한 기업에도 이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장사 대부분이 국민연금이나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2대주주를 차지하고 있어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상장기업 대부분은 이들 펀드와의 대립적 이사회 구도를 갖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감사위원 별도선임 안은 주주들의 의결권 자체를 법률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는 사내이사 감사위원 선임 시에만 이 3% 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모든 감사위원 선임 시 이 3% 룰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외이사를 과반수로 선임해야 하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의 경우 이사 상당수가 대주주와 무관한 자가 이사회 구성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투표 의무화는 기업들에 고비용을 지출토록 강제하고 경영권 찬탈의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현재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전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전자투표 시스템 구축비용과 해킹 우려 때문에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가가 전자투표시스템을 개발해 기업들에 제공하고 해킹에 대한 책임도 국가가 부담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원의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참여권 보장 역시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대우조선 사태 등에서 근로자들의 반대로 구조조정이 지연돼 발생한 수조원의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한 바 있다.

자사주 처분규제 안은 기업의 사전 예방적 구조조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물론 그 취지는 대주주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자사주를 활용해 편법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3년 전 중국의 알리바바가 차등의결권을 보장받기 위해 홍콩이 아니라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한 것을 정치권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한다.

최근 재계는 이런 국회의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어떻게 하면 기업을 혼내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대신 대한민국 경제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진심으로 걱정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삼현 < 숭실대 법학 교수 shchun@ss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