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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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의 국장급 공무원인 A씨는 요즘 국회로 출근한다. 그는 지난해 여름 2년간의 지방자치단체 파견 근무를 마치고 본부로 복귀했지만 몇 달째 보직을 받지 못했다. 작년 10월 이후부터 본격화된 ‘최순실 사태’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등을 거치면서 해당 부처 국장급 인사가 미뤄진 영향이다. A씨는 고민 끝에 다시 파견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소속 부처를 떠났다.

공무원 사회엔 ‘인공위성’이란 용어가 있다. 청와대와 여당, 정부의 각종 위원회, 다른 부처나 외청, 지자체, 국제기구 등에 파견을 나가 있는 ‘별도 정원’ 공무원을 뜻한다. 인공위성은 본부 보직이 절대 부족한 고위직 공무원들의 인사 숨통을 틔워주는 ‘요긴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고민 커지는 파견직 고위공무원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본부 복귀 기약 없는 '떠돌이 인공위성'…승진코스던 청와대 파견직은 '낙동강 오리알'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각 정부부처의 별도 정원으로 다른 곳에 파견 근무 중인 3급 이상 공무원은 작년 말 현재 113명이다. 이들 상당수는 요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본부 복귀가 기약 없이 늦춰지거나 본부에 돌아가더라도 보직 없이 대기 중인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한 경제부처의 B국장이 이런 상황이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국제기구 근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몇 달째 무보직 국장으로 지내고 있다. 또 다른 경제부처 소속의 C국장은 당초 예정됐던 파견 기간이 끝났지만 언제 본부에 복귀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는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으로 갔다가 다른 부처 국장급으로 두 차례 연속 파견 업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탄핵정국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연초에 소폭이나마 개각과 함께 실장(1급)·국장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들의 대규모 승진·전보 인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작년 12월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면서 장관은 물론이고 차관 인사도 문화체육관광부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올스톱’됐다. 차관급 이상이 움직이지 않으니 실·국장 인사도 하염없이 미뤄지거나 인사가 나도 소폭으로 이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공위성’이 ‘지구’(소속 부처의 보직)에 안착할 기회가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전통적으로 인사 적체가 심한 부처일수록 특히 그렇다는 전언이다.

‘떠도는 인공위성’도 속출

무보직이라도 본부에 복귀했거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인공위성들은 그나마 낫다. 파견직이 끝났는데도 다시 파견직으로 발령이 나는 ‘떠도는 인공위성’도 속출한다.

올 들어 정부 위원회로 발령난 E국장은 세 번 연속 외부를 돈 케이스다. 그는 공공기관 파견 근무 후 교육훈련을 받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본부 복귀에 실패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 중인 F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올해 네 번째 파견직을 수행하고 있다.

한 정부부처 국장은 지난 연말 다른 부처 파견을 끝냈지만 본부 보직이 여의치 않자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공무원을 그만뒀다. 현재 타 부처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 공무원은 “올 들어 국장급 이상 인사 폭이 매우 작다 보니 파견직들을 덜 배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승진 코스’ 인공위성도 옛말

인공위성도 나름이긴 하다. ‘승진 코스’로 통하는 자리도 있다. 정부부처의 실장 또는 국장급으로 있다가 관례에 따라 여당에 파견돼 수석전문위원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여당 수석전문위원들은 각 부처에서 1명 정도 차출된다. 당으로 나갈 때는 공무원의 중립성 의무 때문에 사직서를 낸다. 대신 1~2년간의 수석전문위원직을 마치면 한 단계 승진해 소속 부처로 복귀하거나 공공기관장 등으로 영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이후 여당의 위세가 크게 떨어지고 정권교체 가능성도 커지면서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인사적체가 심한 부처에서 파견된 수석전문위원들은 승진은커녕 공무원 복귀도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렸다는 전언이다.

평상시 차관급 공무원으로 영전하는 게 일반적인 청와대 파견 비서관 자리도 마찬가지다. 관가에선 만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해 곧바로 대선이 치러지고 신 정부가 출범할 경우 청와대 비서관 중 상당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복귀도 못 한 채 옷을 벗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경제부처 인사과장은 “국장급 이상 보직이 인원에 비해 절대 부족하다”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공무원과 민간의 자리 교류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파견직 공무원들의 수난은 정권 말마다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열/심은지/오형주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