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리더십…'이재용의 뉴삼성' 좌초되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삼성’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2014년부터 삼성 경영 전면에 등장해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지배구조 개편, 창의적 기업문화 확대 등을 주도해온 이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영어의 몸이 돼서다.

◆과감한 M&A 가능할까

이 부회장이 경영에 나선 2014년부터 삼성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게 과감한 M&A다. 지난해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금액인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를 들여 삼성전자가 미국의 자동차 전장(電裝)기업 하만을 인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하만 외에도 2012년 사물인터넷(IoT) 업체 스마트싱스, 2015년 삼성페이 원천기술을 제공한 루프페이, 2016년 인공지능(AI)회사 비브랩스, 럭셔리 빌트인가전회사 데이코를 사들이는 등 최근 3년간 15개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신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전장사업이 대표적이다. 2015년 삼성전자에 전장사업팀을 꾸린 뒤 하만 인수를 추진해 교두보를 확보했다. 지난해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중국 비야디(BYD)에 5100억원을 투자해 주식 1.92%를 보유하게 됐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이 부회장이 구속돼도 삼성의 일상적 경영은 굴러가겠지만 대규모 M&A 등 큰 변화를 주는 결정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속된 리더십…'이재용의 뉴삼성' 좌초되나
◆지배구조 개편도 당분간 불가능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순환출자 등으로 비난받아온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안정적 승계를 이루면서 ‘쥐꼬리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한다’는 일부 비판에도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비핵심사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2014년 삼성테크윈 등 4개사를 한화에 팔았고, 2015년 삼성정밀화학 등을 롯데에 매각하는 등 화학·방산 계열사를 정리했다. 1938년 창립된 삼성에 처음 있는 대규모 계열사 매각이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방안도 추진해왔다. 대신 계열사별 책임 경영을 확립하기 위해 작년부터 각 계열사에서 사외이사도 이사회 의장을 맡을 수 있게 정관을 바꿨다.

하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런 지배구조 개편 작업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뇌물과 연관돼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이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더 이상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게 현재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업문화 수술 멈추나

삼성은 관리, 의전에 강한 기업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솔선수범해 격식, 의전을 파괴해왔다. 해외 출장이 잦지만 전용기는 팔아버리고 수행비서 없이 홀로 다녔다. 아무 때나 사장들에게 전화해 묻고, 수시로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았다.

이는 기업문화를 젊고 창의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의 경쟁자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하드웨어 기반으로 커온 삼성이 이들과 경쟁하려면 경직된 문화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부회장의 판단이었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인사 제도를 대대적으로 바꾼다. 부장~사원에 이르는 5개 직급을 4개로 줄이고 호칭은 미국처럼 ‘~님’으로 바꾼다.

기업문화 혁신은 인사와도 맞물려 있다. 작년 10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를 맡자 연말 사장단 인사 때 대대적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특검 수사로 사장단 인사는 연기됐고, 17일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당분간 기업문화 수술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