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춰선 크레인 > 법원이 한진해운에 파산 선고를 내린 17일 부산 신항만 한진해운터미널에 컨테이너 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연합뉴스
< 멈춰선 크레인 > 법원이 한진해운에 파산 선고를 내린 17일 부산 신항만 한진해운터미널에 컨테이너 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연합뉴스
“한국 해운업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는데…. 원통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한진해운에서 10여년을 일한 직원 이모씨는 회사 파산 선고가 난 17일 눈물을 훔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 1위 컨테이너선사가 금융논리만 내세운 정부와 대주주의 무관심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가족을 모두 잃은 느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때 세계 7위까지 오른 한국 대표 선사 한진해운이 40년 역사를 공식 마감했다. 법원은 이날 한진해운에 최종 파산 선고를 내렸다. 지난해 9월1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지 170일 만이다.

전체 직원 중 절반가량은 무급 휴직이거나 실직 상태다. 지난해 9월 한진해운에 근무하던 직원은 총 1356명. 이 중 절반가량인 780여명만 SM(삼라마이더스)상선과 현대상선 등 다른 선사에 재취업했다. 직원 50여명은 회사 청산업무를 마무리하고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한진해운에서 20년간 근무한 한 직원은 “과장과 대리급 직원들은 관련 업종 이직을 알아보고 있고, 40대 이상 직원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속이 타들어가는 상태”라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직원도 늘었다”고 했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를 옮기는 지역 하역업체 직원도 상당수 직장을 잃었다. 지난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서만 3000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진해운의 흔적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존속법인은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철수해 염창동의 한 사무실에서 청산 업무만 하고 있다. 주요 자산도 대부분 매각됐다. 한진해운 미주·아시아노선은 SM상선이 인수해 다음달 영업을 시작한다. 새로운 국적 1위 선사가 된 현대상선은 스페인 알헤시라스터미널과 일본 도쿄터미널, 대만 가오슝터미널을 인수한다.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은 세계 2위 선사인 스위스 MSC와 현대상선이 나눠 가져갔다.

해운업계에선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후유증이 오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진해운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77년 세운 국내 첫 컨테이너 선사다. 1992년 국내 선사로는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이후 세계 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한진그룹과 채권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회생에 실패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