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한국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8.0%인 124조원으로 추정하면서 그 규모의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추정치와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연구기관들은 과거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많게는 290조원으로 추산했다. 당시 GDP 대비 25%에 달하는 수치다.

지하경제 규모의 추정치 차이가 최대 수백조원에 달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가정과 변수를 적용해 산출하느냐에 따라 지하경제 추정치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며 “절대 규모보다는 연도별 증감 추세를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124조~290조…지하경제 규모는 '고무줄'인가
◆지하경제 ‘고무줄 추정치’

17일 국세청과 세무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외 연구기관이나 학자들은 국내 지하경제 규모가 적게는 GDP의 약 17%, 많게는 25%에 달한다고 추정해왔다. 가장 최근 나온 연구는 2013년 2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수행(2012년 기준)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자영업자 비율과 선진국 대비 부패수준 등을 근거로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GDP 대비 약 23%인 290조원으로 추산했다.

지하경제 분야 전문가인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린츠대 교수도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 지하경제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9%보다 6.8%포인트 높은 24.7%라고 추정한 뒤 290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여신금융협회는 2009년 기준으로 지하경제 규모를 당시 GDP(1065조원)의 19.2%인 204조원이라고 추정했고, 한국개발연구원은 2006년 기준으로 GDP의 22.0% 수준(200조원)으로 추산했다.

◆가정에 따라 천차만별

이런 선행 분석에 비해 이번 조세재정연구원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비중과 절대 규모가 크게 줄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지하경제 비중은 GDP 대비 5.3~8.0%, 금액으로는 82조6000억~124조7000억원에 머문 것으로 추정했다. 기존 연구에 비해 GDP 비중으로는 최대 17%포인트, 금액 기준으로는 165조원 적은 수치다.

이처럼 연구기관마다 ‘고무줄 추정치’를 제시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실제 지하경제 규모가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어떤 가정과 변수를 사용해 추정치를 계산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이번 연구를 포함해 그동안 국내 지하경제 규모는 대부분 ‘현금통화수요모형’을 활용해 산출했다. 현금통화수요모형은 지하경제에서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 거래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가정에 따라 ①지하경제에서의 현금통화 규모를 우선 추정하고 ②여기에 통화유통속도를 곱해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함수식을 세워 현금통화 규모를 추정하느냐, 협의통화(M1)와 광의통화(M2) 중 어떤 것을 기초로 통화유통속도를 산출하느냐 등에 따라 지하경제 추정치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 나타나”

전문가들은 이런 측면에서 지하경제 규모 자체보다는 연도별 추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GDP 대비 지하경제 비중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최대치 기준으로 2013년 8.7%에서 2014년엔 8.5%로 낮아진 뒤 2015년엔 8.0%로 떨어졌다.

김용민 인천재능대 교수(옛 재정경제부 세제실장)는 “현금거래는 급감하는 반면 신용카드와 모바일 거래가 급증해 소득 탈루가 힘들어지는 데다 국세청이 비용 증빙 요건 강화, 세무대리인 징계 확대 등 지하경제 양성화 조치를 확대한 것이 효과를 내고 있다”며 “국내 지하경제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순 없지만 과거에 비해 큰 폭 감소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