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감옥'에 갇힌 지성…반전이 깨어난다
우리를 진짜 고통스럽게 하는 감옥은 무엇일까. 종신형을 언도받은 사형수든, 비교적 경미한 죄를 짓고 몇 개월을 언도받은 죄수든 상관없이 수감자의 가장 큰 고통은 물론 ‘자유의 구속’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다 풀려나자 오히려 그 바깥의 삶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던 죄수의 이야기처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자유의 구속’이 아니라 ‘구속 없는 자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는. 그러니 우리를 진짜 고통스럽게 하는 건 자유를 구속하는 물리적인 철창 안의 삶이 아니고 몇십 년을 복역하고 풀려나더라도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의 감옥’이 아닐까.

'기억의 감옥'에 갇힌 지성…반전이 깨어난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사진)의 박정우 검사(지성)가 처한 처지가 그렇다. 아내와 딸과 행복하게 살아가던 잘나가던 검사. 어느 날 깨어나 보니 사형수가 돼 감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기억이 뭉텅 잘려나간 그 지점에, 자신이 아내와 딸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여러 증언과 증거들이 채워진다. 그는 믿을 수가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자신이 죽였다니. 항소심에서 검사 측이 제시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백 동영상은 그를 절망하게 만든다. 절망감에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 같은 감방에 있던 성규(김민석)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자신이 아이를 죽였다는 것. 하지만 출소한 성규가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정우는 조금씩 기억을 되살리면서 진범이 과거 자신이 쫓던 희대의 살인마인 재벌 3세 차민호(엄기준)라는 걸 기억해낸다. 그리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진범인 것처럼 증거들을 조작했다는 것도.

박정우를 괴롭히는 것은 결코 감방이 부여하는 ‘자유의 구속’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아내와 아이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그 증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워낙 큰 충격 때문인지 그의 기억은 단기적인 망각에 빠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기억은 망각이라는 기제를 끌어내 그 고통으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해준다. 하지만 망각 위에 누군가 조작해 놓은 기억으로 인해 그는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기억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망각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지 못한 채 의심하는 건 더 큰 고통이다. 그는 ‘기억의 감옥’에 갇혀버렸다.

작품이 굳이 ‘기억’이라는 장치를 가져온 건 우연일까. 물론 이 장치가 ‘반전의 반전’을 만들어내는 기폭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마치 역할수행게임(RPG)에서 캐릭터가 앞으로 나가야 비로소 구조와 적들을 파악할 수 있는 던전(지하 미궁)이 주는 긴장감처럼, 향후 어떤 전개가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예상을 뒤집는 반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효과뿐일까. ‘기억’의 문제는 최근 들어 우리네 대중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픈 기억이 그렇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의 기억이 그렇다. 우리는 알고 보니 모두 ‘피고인’이고, 그 죄는 바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묻어뒀다는 것이다.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기억들. 그래서 때로는 이를 직시하지 않고 망각의 늪 저편으로 가라앉혀둔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고픈 욕망이 꿈틀댄다. 하지만 그 망각 위에 누군가 조작한 기억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엄청난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아파도 힘들어도 그 고통스런 기억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비로소 ‘기억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