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치고 물류대란…교훈 남긴 해운 구조조정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 확실시되던 지난해 8월 30일.


이 회사의 5천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인 '한진로마호'가 싱가포르 항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한진해운이 빌린 선박 용선료를 체불하자 독일 선주가 싱가포르 법원에 선박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물류대란'의 시작에 불과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바다 위를 항해하던 이 회사 선박에 대한 가압류와 항만 당국의 입항 거부가 잇따랐다.

당시 한진해운 선박에 실렸던 화물 총 54만TEU는 처리가 지연되거나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건 납기일을 지키지 못할 처지가 된 화주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직접 비용을 지불해 억류된 화물을 찾아오거나 대체 선박을 급히 물색했다.

압류가 장기화하면서 선원들도 피해를 봤다.

항만국 통제에 따라 의무적으로 남아야 했던 선원 일부는 제한된 선내 음식과 생필품으로 가압류가 풀릴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물류대란은 법정관리 신청 3개월 만에야 겨우 수습됐지만 이 기간 발생한 피해 규모는 제대로 추산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이후에도 중소 협력업체들이 미수금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한진해운과 관련 업종에서 수천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는 등 후폭풍이 이어졌다.

한진해운 파산과 물류대란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회사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고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대주주에 있다.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금융논리에만 매몰돼 원양 컨테이너선 사업과 해운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금융당국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해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 지원을 놓고 채권단과 한진그룹의 줄다리기가 이어지자 해운업계는 법정관리 시 산업 전반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양측에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혈세를 투입하기에 앞서 경영권 포기 등 추가적인 대주주 책임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고, 한진그룹은 경영상 더 이상의 자구 노력이 어렵다고 맞서면서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할 '골든타임'을 놓친 점에도 아쉬움을 드러낸다.

두 회사가 자율협약을 신청할 만큼 재무 상태가 악화하기 전 정부가 글로벌 해운시장의 흐름에 맞게 합병을 추진해 초대형 국적 선사로 덩치를 키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 선사의 법정관리가 유례없던 일인만큼 정부가 후폭풍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한진해운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