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원화강세,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수출이 전년에 비해 3개월째 늘어나면서 최악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원화가 빠르게 절상돼 모처럼의 수출증가세가 힘을 잃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차를 고려하면 하반기 경기를 억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원화강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달러 우려 발언과 관련 깊다. 선거 과정에서 공언한 대로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이 확산되면서 해당 통화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환율제재를 추진하는 것은 중국 등 대미 흑자폭이 큰 제조강국들의 통화를 절상시켜 일자리를 늘리고자 하는 트럼프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달러화는 2011년 하반기 이후 강세흐름이 이어져 40% 가까이 절상됐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에서 순수출의 ‘마이너스 성장 기여도’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1988년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달러화는 뚜렷한 약세를 나타낸 바 있다. 최근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의 통화가치가 동반상승한 것은 이 같은 변화가 미리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달러화가 6년에 걸쳐 큰 폭 절상됐고 경제여건상 강세가 유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환율제재가 추진될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5월 6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사실에서도 뒷받침된다.

더 큰 문제는 환율조작국 지정이 현실화될 경우 원화의 상대적 강세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실효환율 측면에서 원화를 크게 절상시켜 수출에 부담을 주게 된다.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경제규모가 큰 나라들은 미국의 절상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환율압박을 무산시키거나 누그러뜨릴 수단이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질 경우 무역제재와 자본유출로 해당국 통화가 약세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환율제재와 맞물린 미국의 무역제재 시 경제적 타격이 큰 데다 내수시장이 협소해 무역갈등을 버틸 여력이 작아 원화환율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미 군사의존도가 높은 데다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등 경제 외적인 측면에서도 대미협상력이 높지 않다. 과거 경험을 보면 원화는 1988년 환율조작국 지정 후 7개월간 8% 절상됐다가 지정이 해제되면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대만달러 역시 지정된 후 1년간 12.3% 절상된 바 있다.

펀더멘털 개선이 없는 통화절상은 경제에 상당한 부담과 후유증을 남긴다.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볼 때 현 수준은 2007년의 원화가치 고점에 거의 근접해 추가적인 가치 상승은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 경제는 원화가치 고평가 조정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치른 바 있다. 현재는 외화부문의 안정성이 대폭 개선돼 금융시장 충격 가능성은 낮지만 수출을 중심으로 실물부문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상대적 경기호조와 금리인상 등 경제 기초여건상 올내년 달러화 강세와 원화약세 전망이 대세였다. 따라서 이 기회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됐다. 경제정책 지속가능성의 한계로 트럼프 집권 후 1~2년이 지나면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하리라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 전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환율제재라는 정책효과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며 그 기대마저 약화될 수 있다. 또 앞서 본 것처럼 환율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흐름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정책대응에 한계가 있지만 절상압박을 막기 위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외교적 설득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추이에 유의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정책금리 인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외불균형 완화를 위해서는 소비, 투자 등 내수를 키우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