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회 모임에서 고 정주영 회장(오른쪽)과 환담하는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강원도민회 모임에서 고 정주영 회장(오른쪽)과 환담하는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강원 평강군 부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소년의 편안하고 넉넉하던 삶은 한반도 분단으로 무너져 내렸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 ‘이승만·김구 타도’ 구호가 난무하자 아버지는 소년의 이름을 ‘승만’에서 ‘용만’으로 바꿨다. 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징집을 피해 홀로 월남한 17세 소년은 배고픔을 이기려고 군대에 자원했다. 이듬해 6·25전쟁의 가장 격렬했던 전장으로 기록된 홍천 가리산 일대 전투에서 총알 두 발을 맞았다. 한 발은 지금도 척추에 깊이 박혀 있다.

상이용사로 ‘명예제대’했지만 살 길이 막막했다. 육촌형 집의 한 평 남짓한 연탄창고를 개조한 쪽방에 살며 ‘주경야독’으로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남보다 3년 늦게 대학에 들어가 혼자 힘으로 학업을 마친 뒤 1962년 어릴 때부터 꿈꾸던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잘나가는 재무 관료로 재무부 이재국(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 과장과 국장, 기획관리실장과 차관보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직후 오해에서 빚어진 ‘대통령 처삼촌 면회 요청 거절 죄’로 해직됐다. 약 2년간 야인 생활을 하며 절치부심하다 중앙투신금융·신한은행·외환은행 최고경영자(CEO)로 큰 성과를 올리고, 11년 만에 재무부 장관으로 금의환향했다. 숱한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성공적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그에게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책마을] 대하소설 같은 인생…실향 소년, 재무장관 되다
대하 역사소설의 굴곡진 주인공의 삶이 이럴까. 《이용만 평전》에서 그리는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84)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 경제경영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이 《김재철 평전》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평전이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해 70여명의 정·관·재계 인사와 지인들을 인터뷰해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한국 현대사와 경제성장사를 관통하는 한 공직자의 인생 역정을 유려하면서도 긴박감 넘치게 펼쳐 놓는다.

저자는 재정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요직에 있던 이 전 장관이 남덕우 당시 재무부 장관을 보필하면서 경제개발 수행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금 동원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는 기업들에 실탄을 제공하고 금리 비용을 낮춰주고, 기업에 금융자금이 쏠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기관 및 제도를 수립해 자리 잡게 한 핵심 실무자였다. 정부가 신용할당 기능을 틀어쥐고 금융자금을 정책 목적에 맞게 배분한 ‘정책금융’의 일선에서 뛰었다.

이를 두고 ‘관치금융’이란 비난도 적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이렇게 평가한다. “정부의 신용할당에 의한 실물부문 경제개발이란 이득은 금융부문의 자율성 억제라는 손실보다 월등했다.” 저자는 이 전 장관을 변화무쌍한 삶의 현장에 인생을 쌓아온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정책도 그렇지만 삶도 담백한 현실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기 누구보다 치열하고 과감했던 이 전 장관을 비롯한 재무 관료들의 활약과 부처 간 갈등, 석유 파동·사채 동결 등 굵직한 사건에 맞선 정책적 대응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시장경제 기반이 부실하던 시절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틀을 확립해 오늘의 한국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정부 부문의 경쟁력 하락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경제개발 초기 우리 사회를 이끈 공직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며 “무엇보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떨어진 한 젊은이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지혜와 용기, 위안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