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자력정책, 글로벌 시장도 바라봐야
월성 1호기의 운전허가 연장에 대한 취소 처분, 경주 지진으로 인한 안전성 우려, 일본 후쿠시마 사고의 트라우마로 원자력 발전을 우려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 40년간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한 원자력이 ‘위험하다’는 프레임으로 토사구팽될 처지에 놓인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원자력은 세계적으로 그 영향이 연결돼 있는 만큼 원자력 정책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상황도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

최근의 세계적 동향을 보면, 스웨덴은 전력의 40%를 원자력에서 얻고 있어 한국과 비슷한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폐쇄 정책에서 기존의 원전 점유율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기존 원전을 대체하기 위한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50%의 전력을 담당하는 원전을 모두 폐쇄하겠다는 벨기에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전력에너지 안보와 저탄소 전력공급을 심각히 위협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 역시 저탄소에너지의 실현을 위한 원자력 역할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와 일리노이주는 기후변화 대응에 중요한 에너지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원에 포함시켰다. 영국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두 축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프랑스전력공사와 중국핵전그룹이 투자하는 2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했고, 11기의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영국의 원자력 시장을 보고 일본은 도시바와 히타치가 현지 합작회사를 차리고 건설 준비를 했는데 최근 미국에 건설 중인 원전 사업에서 예상치 못한 손실을 입은 도시바가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자 영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 중인 한국의 신고리 3호기 노형의 영국 진출 의향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UAE에 성공적인 원전 건설과 신고리 3호기 준공이 세계적으로 우리 원전 기술의 브랜드 가치를 확인해 준 증표라고 하겠다. 지금도 세계 13개국에서 60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주춤하던 세계 원전시장은 안전성을 확고히 한 신규 원전을 바탕으로 변화의 전기에 있다.

한국이 이렇듯 성공적인 원자력 기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일관된 정책과 꾸준한 건설을 바탕으로 전문 인적 자원을 비롯해 탄탄한 기술기반과 기자재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 기술의 안전성에 대해 국제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 추진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심사도 큰 이슈 없이 예정대로 진행돼 내년에 안전성 평가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핀란드 진출을 위해 신고리 3호기를 유럽의 전력산업과 안전요건에 맞춰 보완한 유럽형 APR-1400도 핀란드 전력사업자 사정으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유럽의 기준에도 맞출 수 있는 기술력을 보여줬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소형 원전인 SMART의 자국 건설 타당성 조사를 위해 1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렇듯 원전 도입 40년 만에 세계에서 주목하는 우리의 원자력 기술이 사장되는 정책적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원전과 같이 검증된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이 국내에서 외면받는다면 해외 진출은 요원해질 것이다. 더구나 신고리 5, 6호기를 비롯해 새롭게 추진되는 원전들은 기존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다양한 안전관리 기술로 무장돼 있다. 오래된 원전을 폐쇄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신규 원전을 정책입안자들이 외면한다면 가까스로 키워온 소중한 지식자산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멀리 보면 기후변화라는 재앙을 미래에 남겨두지 않을까 염려된다.

정동욱 < 중앙대 교수·원자력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