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0일까지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완 작가.
내달 10일까지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완 작가.
한 젊은 작가가 최근 직업소개소에서 시간당 8000원을 주고 몽골,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에서 온 외국인과 내국인을 섞어 노동자 8명을 고용했다.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그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붓털이 달린 붓을 하나씩 나눠줬다.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일은 가로 162㎝, 세로 130.5㎝ 또는 가로 91㎝, 세로 73㎝의 캔버스에 단색 물감을 꼼꼼히 칠하는 것. 하루평균 7시간씩 닷새에 걸쳐 일하자 색칠이 끝났다. 작가는 그 위에 의미 없는 선 몇 개를 죽죽 그었다. 그는 “이 그림은 작가와 노동자 그 누구에게도 작품으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단지 계약을 성실히 이행한 흔적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는 5월 개막하는 ‘2017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돼 주목받고 있는 이완 얘기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회화 작품에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런 회화 작품 9점과 비디오 작품 2점을 전시하는 개인전이 서울 성북동의 갤러리 ‘313아트프로젝트’에서 15일 개막했다. 전시는 다음달 10일까지다. 313아트프로젝트는 당초 서울 신사동에 있다가 올해 성북동으로 옮겼다. 여느 갤러리와 달리 입구부터 내부까지 모두 가정집 구조여서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작가는 이날 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자들은 누구도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지 않고 고용주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고 설명했다. 열심히 그렸지만 노력은 껍데기처럼 남았고 알맹이는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여기에 작품의 진짜 의미가 있다. 이 작가는 한 캄보디아 노동자와 대화한 경험을 들려줬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느냐니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대요. 주위를 둘러보면 나의 삶과 관계없는 일에 인생 대부분을 쏟는 분이 많습니다. 이 그림은 그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삶의 무의미함을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요.”

그의 비디오 작품 2점도 함께 전시됐다. 아시아 12개국을 방문해 수저 만들기부터 식재료 구하기까지 한 끼의 아침식사를 마련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고 비디오로 담은 ‘메이드 인’ 시리즈다. 이번 전시회에는 대만과 중국을 찍은 두 작품이 전시됐다. 중국 편에는 1000년 된 수도원의 마룻바닥 나무를 깎아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장면도 있다.

이 작가는 “1000년의 역사가 단지 한 번의 식사로 소모될 나무젓가락이 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며 “광범위하게 분업을 하는 현대의 경제구조에서 가치와 의미가 변질되고 있는 아시아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