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자 삼성 임직원이 충격에 빠졌다. 재계 관계자들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것은 특검의 오기”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은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자 삼성 임직원이 충격에 빠졌다. 재계 관계자들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것은 특검의 오기”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은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14일 새벽 1시에 조사를 마치고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표정은 1차 소환 때보다 어두웠다. 이 부회장을 구속하기 위한 특검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읽혔다.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을 위해 지난주부터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부터 정유라 씨를 위한 말 추가 구입까지 3~4가지 의혹을 동시다발적으로 언론에 흘렸다. 애초에 문제 삼았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관계 없는 별건수사다. 기어이 이 부회장을 구속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무리한 영장 청구는 책임 회피”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1차 구속영장 청구 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근본 원인은 해소되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한 수사 진행 경과가 미흡하다”고 했다.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등 관련자 조사에는 큰 진척이 없다.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도 여전하다.

그런데도 특검이 구속영장 재청구에 나선 것은 법적인 이유보다는 주변 여건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검의 1차 수사 기한(70일)이 이달 28일로 다가온 가운데 ‘박 대통령이 경제계에서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줬다’는 증거를 하나라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특검이 지금까지 내놓은 것은 정황 증거들뿐이다. 이 부회장을 구속해 특검이 칼자루를 잡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내비친다.

“두 차례나 영장을 청구했음에도 법원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정치적 부담을 법원에 지우려는 포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각되더라도 구속영장을 두 차례 청구한 특검은 최선을 다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나라가 떠들썩하게 조사하고도 부풀려진 의혹에 비해 밝혀진 내용이 많지 않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책임론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먼지떨기식’ 의혹 제기

1차 영장청구 때 특검은 사실상 한 가지 주장에 집중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들어주도록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기한 의혹만 네 가지에 이른다. 특검이 어떻게든 이 부회장을 구속하기 위해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 전후 경영 행위를 ‘먼지떨기’식으로 모두 엮어 놓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특검은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후에도 삼성이 정씨에게 추가로 말을 사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우회적으로 했다고 하지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 규모를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낮추기 위해 로비를 했다는 혐의도 마찬가지다. 로비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이 뒤집혔다지만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소명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거나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 관련 부처에 로비를 했다는 주장은 관련 업계에선 이미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삼성을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관계자들이 힘들게 설득해 돌려세운 건 기업공개(IPO) 시장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며 “저렇게 무리한 혐의까지 들어 이 부회장을 구속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다시 구속 위기에 놓이면서 삼성의 인사 및 투자, 사업 재편 등 전반적인 경영쇄신 작업은 올스톱될 상황이다. 사장단 인사는 이미 3월도 물 건너갔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구상을 밝히며 모처럼 내놓은 이사회 투명성 높이기 등 각종 쇄신안도 실현이 어려워졌다.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외국계 기업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고 발표했지만 대상자 선정 등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그룹 차원의 중요한 의사 결정도 대부분 멈췄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 이후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에도 그룹 역량의 상당 부분을 이 부회장을 둘러싼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나라는 앞다퉈 기업 활동을 격려하느라 발벗고 뛰는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