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없는  군산조선소의  딜레마
수주절벽’으로 일감이 떨어진 현대중공업이 올 하반기부터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경기가 회복되면 재가동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역에서는 사실상 폐쇄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선주자들도 잇따라 군산으로 달려가 “조선소 가동을 유지해야 한다”며 ‘표심 잡기’에 나섰다. 2010년 현대중공업이 1조4600억원을 투자해 건설한 군산조선소는 연간 13척의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며 전북 수출의 9%, 군산 경제의 24%를 담당했다.

대선주자 잇따른 ‘군산행(行)’

일감 없는  군산조선소의  딜레마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14일 전북기자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수주물량이 없다고 군산조선소를 섣불리 폐쇄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대선주자들은 대주주를 압박하기도 했다. 같은 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는 지난 13일 군산시청을 방문해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직접 만나는 ‘트럼프식 담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하진 전북지사와 문동신 군산시장 등은 서울 평창동 정 이사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대선주자들은 수주 물량을 새로 배정하거나 공공발주를 하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군산조선소에 최소 수주 물량을 배정해 가동을 유지하는 것과 중단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며 현대중공업을 압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지난 1일 “정부가 가동 중단 철회를 전제로 군함 등 공공용선을 조기 발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레 없는 조선업 불황으로 구조조정 고삐를 더 조여야 하는 현대중공업은 정치권의 간섭이 늘어나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대선주자들의 요구가 비현실적인 데다 요구대로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대안들

군산조선소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주로 제작하는 도크다. 이재명 시장의 말대로 정부의 공공발주 대상인 군함이나 중소형 선박을 지을 수 없는 구조다. 현대중공업은 군함 등 특수선 건조를 위한 폐쇄형 도크를 울산에 별도로 두고 있다.

울산조선소의 일감을 빼서 군산조선소에 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주계약 당시 선주가 건조를 원했던 조선소를 조선사가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조선업계 설명이다. 대선주자들의 말대로 했다간 군산과 울산 간 첨예한 지역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울산시의회는 지난 13일 현대중공업 분사 사업장 및 연구 기능의 지역 존치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현대중공업의 ‘탈(脫)울산’ 조짐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수주절벽이 지속되면 울산조선소 도크도 2~3개 정도 가동이 중단될 것으로 보여 노조 반발도 예상된다. 10개 도크가 있는 울산조선소는 특수선과 해양플랜트용 도크를 제외하면 6개 도크만 가동하고 있다. 현재 도크로 2007년 150척을 수주했지만 올해 예상 수주는 40척에 불과하다. 일감은 전성기의 4분의 1수준인데 울산 노조의 반발 때문에 도크를 크게 줄이지 못한 것이다. 군산조선소 일자리를 늘리려면 울산조선소 일자리를 줄일 수 밖에 없다. 군산조선소의 정규직 인력은 600명이고, 울산은 2만명이다.

군산조선소에서 다양한 배를 짓도록 추가로 투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존 울산 도크도 일감이 없어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데, 설비에 중복 투자하는 것은 주주로부터 ‘배임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현대중공업 측은 설명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군산은 안개가 자주 껴 녹이 잘 슬고 눈이 많이 내리는 등 건조를 위한 기상여건이 울산보다 좋지 않아 추가 투자가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직원 600명에 대해 울산조선소 등으로 전환배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2700여명에 달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으로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