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100년 전 신어생성기 '양 - '
‘아관망명.’ 그동안 배워온 아관파천을 새롭게 해석한 용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가 지난달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을 펴내 주목받았다. 파천은 일본에서 쓰는 말이고 국제법상 망명이 맞다는 주장이다.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새벽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121년 전 이맘때 일이다. 역사는 그것을 아관파천이라 이른다.

‘아관’의 ‘아’는 아라사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외국 지명을 한자를 빌려 옮겼다. 중국에서 러시아를 ‘俄羅斯’로 적고 ‘어뤄쓰’라 읽었다. 일본에서는 ‘露西亞’로 음역했다. 그것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게 아라사와 로서아다. 우리는 두 가지를 다 들여다 썼다.

개화기 때 신문물이 밀려들면서 새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중 접두사 ‘양(洋)-’은 생산성이 뛰어나 무수한 말을 만들어냈다. ‘신어제조기’였다고 할 만하다. 고종이 러시아공관에서 지낼 때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는 음료를 처음 접하곤 곧 그 맛에 빠져들었다. 이를 당시에는 영어발음을 따 ‘가배’라 했다. 서민들은 좀 더 그럴싸하게 불렀는데, 양탕국이 그것이다(《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커피의 검고 쓴맛이 마치 한약을 달인 탕과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月星商會 양말織造工場’, ‘여보 구쓰를 어대셔 잘짓소/한 수십켜레 맛처야겟소… 金田洋靴店’ 1920년대 신문에는 양말, 양화점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특이한 것은 당시에도 양말은 한글로 썼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양말은 어원 의식마저 흐려져 순우리말 같은 느낌을 준다. 서양에서 버선(襪·말)과 용도가 비슷한 것이 들어오자 앞에 ‘양-’을 붙여서 만든 말이다. 양화는 지금의 구두다. 당시 신문은 일본말 ‘구쓰(くつ·靴)’도 함께 썼는데, 나중에 음이 바뀌어 구두가 됐다.

소시지를 양순대, 자동차를 양차, 페인트칠을 양칠이라 했으니 놀라운 조어력이다. 지금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양행(洋行)이나 양회(洋灰)도 점차 아련해지는 말이다. ‘서양으로 다닌다’는 뜻인 양행은 지금으로 치면 무역회사다.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 같은 회사 이름에 남아 있다. 양회는 시멘트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1위 시멘트 제조업체 쌍용양회의 그 양회다. 1962년 설립됐으니 아직은 낯설지 않다. 모두 지난 시절 사회상을 보여주는 우리말 자산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