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쑤성 쉬저우(徐州)시 페이(沛)현에 있는 한고조 유방의 동상. 북방 민족이 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쑤저우는 중국사에 이름을 남긴 큰 정치가를 많이 배출했다.
장쑤성 쉬저우(徐州)시 페이(沛)현에 있는 한고조 유방의 동상. 북방 민족이 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쑤저우는 중국사에 이름을 남긴 큰 정치가를 많이 배출했다.
[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3) 장쑤(江蘇)] 실용성·유현성 어우러진 인문의 중심
거대한 중국 땅에도 남북의 경계는 존재한다. 인문이 두텁게 쌓이면서 생기는 문화적인 가름이다. 그 남북의 경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화이허(淮河)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물길을 넘으면 귤이 탱자로 변한다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생태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곳에 터전을 닦고 사는 사람과 그 생각, 문화도 제법 다를 수 있다. 이런 중국의 남북 경계를 안고 있어 양쪽의 차이를 고스란히 잘 드러내는 곳이 바로 장쑤(江蘇)라고 할 수 있다.

장쑤는 하천이 아주 많다. 우선 화이허를 비롯해 남부 지역에는 중국 제1의 하천인 창장(長江)이 흐른다. 중국에서는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습지가 많고 하천과 함께 호박(湖泊)이 발달했다. 평지의 비율은 70%, 하천과 호수의 수면(水面)을 합치면 비율은 90%로 중국에서 단연 으뜸이다.

부유한 쑤난, 인물 많은 쑤베이

앞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중국의 문명 구성은 처음부터 매우 다양했다. 그 다양한 요소가 중국이라는 정체성 밑으로 모여 앉는 과정은 치열했다. 우선 다양성이 통합으로 향할 때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아주 잔인할 정도로 자주 벌어졌다. 특히 북방의 유목 제족(諸族)이 남하할 때, 또는 매우 너르고 평탄한 화베이(華北) 평원에서 피해가기 힘든 통일전쟁이 벌어질 때의 인문적 환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럴 때 남북의 경계는 심하게 흔들릴 때가 많았다. 전쟁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이동 때문이었다. 장쑤는 그런 상황에서 늘 흔들리기 쉬운 곳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전쟁을 피해 이동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었던 까닭이다. 말하자면, 장쑤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인구이동의 선(先)기착지였다.

이곳의 성도(省都)인 난징(南京)은 그를 잘 대변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벌어진 중국 중원 인구의 대규모 남하는 이 난징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화이허 남쪽이자 북방 침략자들의 발길을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창장을 끼고 있어서다. 장쑤 북쪽은 보통 쑤베이(蘇北), 남쪽은 쑤난(蘇南)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이 쑤베이와 쑤난 사람들이 상대를 서로 원수 대하듯이 하는 광경은 중국사회에서도 늘 화제에 오를 정도다. 쑤난은 중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상하이(上海)의 배후지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다. 이곳에 일찌감치 터전을 잡고 발전했던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문화 바탕에 전쟁을 피해 일찍 이주해와 정착한 북방의 인문이 결합해 화려한 지식의 전통을 쌓았던 곳이다. 왕조 시절 과거 급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고, 지금은 비즈니스에 아주 강한 면모를 보인다. 대도시 상하이를 끼고 있어 경제적 활력이 대단하다.

그에 비해 쑤베이 사람들은 경제적 형편이 그에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쑤난 사람들은 쑤베이 사람들을 깔보거나 제대로 상대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쑤베이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하다. 중국 문명의 토대를 쌓았던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배출했고, 그와 자웅을 겨뤘던 항우(項羽)도 낳았기 때문이다. 유방을 따랐던 한신(韓信), 소하(蕭何), 번쾌(樊) 등도 다 이 지역 출신이다. ‘중국 총리’의 대명사 격인 저우언라이(周恩來)도 원적지가 이곳이다. 또한 1980년대부터 10여 년 동안 중국을 이끌었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중부 양저우(揚州)에서 자랐다. 그래서 쑤난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쑤베이는 큰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다는 말을 듣는다.

서유기 수호전 홍루몽의 고향

7900만 명의 인구로 1인당 GDP에서 늘 중국의 수위를 다투는 장쑤는 인문의 전통에서도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중국 4대 기서(奇書) 가운데 《서유기(西遊記)》 《수호전(水滸傳)》 《홍루몽(紅樓夢)》의 저자인 오승은(吳承恩), 시내암(施耐庵), 조설근(曹雪芹)이 다 장쑤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북방의 문화가 남방의 그것과 일찍 결합하면서 이뤄진 높은 인문의 전통, 평원에 널린 무수한 물길과 호소(湖沼)가 드리운 공간적 상상력이 한데 영글어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장쑤는 그래서 북방의 실용성, 남방의 유현(幽玄)한 사고가 현란하게 맞물리는 곳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