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대주주, 최고경영자(CEO) 등이 보유 주식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주식담보대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경영권 확보나 방어·승계 등에 필요한 자금을 주식담보대출로 조달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면서다. 증권업계가 주식담보대출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은행들이 가세하는 추세다.
대주주 주식담보대출 급증…개인투자자 피해 우려
◆은행권도 주식담보대출 ‘가세’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식담보대출 잔액은 13조767억원으로, 1년 새 17%(1조9043억원)가량 급증했다.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대기업 오너가(家)의 주식담보대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게 협회의 분석이다. 주식담보대출은 주식을 담보로 잡히더라도 의결권은 그대로 행사할 수 있어 그룹 지배력 강화나 계열사 지원 등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주식담보대출은 그동안 증권회사에서 주로 취급했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이뤄진 주식담보대출 사례로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롯데쇼핑 주식 250만5000주를 담보로 미래에셋대우(120만주), 대신증권(90만주), 한국증권금융(40만5000주) 등에서 2500억원 안팎을 대출받았다. 신 전 부회장은 이 자금으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2000억원대 증여세를 대신 냈다.

최근엔 은행들도 주식담보대출에 적극적이다. 기업 오너가에 주식담보대출을 해주면 해당 기업과 금융거래를 확대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몇몇 은행이 관련 시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KEB하나은행이 대표적이다. 이 은행은 지난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롯데쇼핑 주식 101만주를 담보로 신 회장에게 약 1000억원을 대출해줬다.

대출금리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중간 수준인 연 4%대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의 주식담보대출 금리(연 7% 안팎)보다 낮다. 롯데그룹 주채권은행은 재일동포 주주의 영향력이 큰 신한은행이지만 KEB하나은행이 공격적인 영업으로 신 회장의 주식담보대출을 성사시켰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일반 투자자 보호 강화해야”

증권업계와 은행권은 대개 주식 시세의 50~70%가량을 담보가치로 인정하고 그만큼만 대출한다. 담보로 잡은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바로 반대매매를 하거나, 추가 담보 또는 자금 상환 계획을 대출 실행 전에 약정받는 식으로 관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주식담보대출 대부분을 대주주나 기업 CEO가 받는 상황에서, 주식담보대출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공시된 ‘의결권 있는 주식에 대한 담보 제공계약’(지난달 20일 기준) 417건 가운데 59%인 247건은 해당 종목의 주가가 계약 전날보다 떨어졌다.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대주주의 재무상황이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가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대주주 등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담보가치 하락으로 반대매매가 이뤄지면 주가가 더 떨어져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피해 사례도 있다. 상장법인 대주주가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 정보를 사전에 얻어 사채업자에게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뒤 사채업자가 담보주식을 매도해 갚는 방식으로 약 20억원의 손실을 회피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인 대출에는 온갖 규제와 제한이 가해지는 반면 기업 대주주 등의 주식담보대출에는 규제가 거의 없다”며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공시 등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김일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