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 한경 DB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1년 넘게 교육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국정 역사교과서의 끝은 허무했다. 교육부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건국절 논란을 비켜갔다. 국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수립’ 표현 유지, 검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 허용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낸 것이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및 2015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도서 집필기준 발표’ 브리핑을 갖고 이 같이 발표했다.

그는 질의응답을 통해 “의견수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시된 의견이 ‘대한민국 수립’이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었다”면서 “혼용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지만 국민의 시각에서 두 가지를 수용했다. 고심 끝에 국정과 검정이 함께 들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국정과 검정교과서가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종본은 나왔지만 학교 현장의 혼란은 더욱 커지게 생겼다.

교육부는 잇달아 입장을 바꿨다. 작년 11월28일 현장검토본 공개와 동시에 격렬한 보혁 논쟁을 빚은 게 발단이었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태는 악재가 됐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여론은 한층 악화됐다. 그러자 12월27일 현장적용 방안을 발표하면서는 교과서 적용시기를 1년 늦추고 국·검정을 혼용토록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이날 국정과 검정을 다르게 서술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의 ‘이도 저도 아닌’ 대책을 최종 결론으로 내놓았다.

교육 당국의 애매모호한 입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역점 사업을 백지화하지는 않으면서, 거센 반대 여론을 감안해 나름의 절충·유예안을 거푸 제시한 셈이다.

이러한 ‘결정장애’가 어느 쪽에게도 환영받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진보 교육감들은 즉각 “국정교과서 폐기가 국민의 뜻”이라며 반발했다. 앞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국정교과서 사용을 금지하는 ‘역사 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을 의결한 바 있다. 역사관 차이에 따른 혼란을 줄이자는 당초 국정교과서 개발의 명분마저 무색해졌다.

이 차관은 교육부 결론이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에 대해 ‘다양성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는 국정교과서 개발 의도와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교육부는 그간 역사교육에서만큼은 학생들의 혼란을 없애야 한다며 국정교과서를 정당화했다. 스스로 정한 국정교과서 공식 명칭이 ‘올바른 역사교과서’임을, 즉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의미임을 교육부는 이미 잊어버린 것일까.

☞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고수, 검정엔 '정부 수립'도 허용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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